“공교육 강화, 방향 맞지만 액션 플랜 미흡”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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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7호 05면

대입전형은 간소하게, 사교육은 지금보다 훨씬 적게-.
12·19 대선을 한 달 앞둔 박근혜·문재인·안철수 세 후보가 발표한 교육공약의 골자다. 누가 당선되더라도 교육정책의 흐름은 종전과 상당히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중장기적 과제 논의를 위해 국가미래교육위원회(박), 국가교육위원회(문), 교육개혁위원회(안)등 초당적 합의기구를 설립한다는 것도 공통적이다. 문제는 실현 가능성과 구체적인 액션 플랜이다. 중앙SUNDAY는 세 후보의 교육공약 중 대입과 사교육 분야에 대해 전문가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전문가들은 크게 세 분야로 나눴다. 첫째는 자체적으로 만든 공약을 후보에게 제안하거나 공약 평가를 실시한 사교육걱정없는세상·좋은교사운동 등 교육운동단체다. 둘째는 손주은 메가스터디 대표, 이만기 중앙유웨이교육 평가이사 등 대입·사교육 정책에 민감한 스타 학원강사다. 셋째는 한국교총·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등 교사와 학부모다. 세 후보 중 아직 구체적인 교육공약을 발표하지 않은 박근혜 캠프엔 따로 질의서를 보냈다.

교육현장에서 본 대선 후보 교육공약

“문재인 공약 실현될 경우 학원엔 직격탄”
후보들의 교육현실에 대한 인식 수준은 일단 합격점을 받았다. “3000여 가지에 이르는 복잡한 대입전형, 국내총생산(GDP)의 3%인 20조원을 넘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인 사교육비 부담 등에 대해 비교적 진일보한 인식을 보여 줬다”는 것이다. 14일 대선후보 교육공약 평가를 발표한 좋은교사운동(대표 정병오) 역시 “2007년 대선 때보다 교육문제의 핵심에 더 다가섰고 후보들 나름대로 대안을 제시하려 했다”는 총평을 내놨다.

사교육공약에 대해 손주은 메가스터디 대표는 “후보들이 사교육비를 가계지출이 아니라 사회적 비용이라는 인식으로 접근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박 후보의 경우 방과후 학교 개선 등 공교육 틀 안으로 넣어 보려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고 평했다. 그는 특히 해 진 뒤 사교육 금지, 예체능을 제외한 초등학생 사교육 금지, 영어 사교육 폐해 근절 등 아동교육복지기본법(가칭) 제정을 앞세운 문 캠프 공약을 “시의적절하다”고 봤다. “이 정도로 파격적인 정책이 실행되면 우리 같은 사교육업체는 직격탄을 맞겠구나 싶다. 이렇게 혁명적인 방안이 필요할 정도로 상황이 곪았다는 얘기 아니겠나.”

이만기 중앙유웨이교육 평가이사도 “문 캠프가 중·고교 사교육이 아니라 초등 사교육에 주목한 점이 눈에 띈다. 실제로 초등생 사교육비가 중고생 사교육비를 추월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송인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대표는 “학벌 중심 채용시장이 사교육의 가장 큰 유발요인인데, 문·안 캠프 공약을 보면 지방대생 채용 확대 등 정책적 접근이 보여 바람직하다. 다만 선행학습 같은 소위 ‘질 나쁜 사교육’에 대한 구체적 안이 후보들 공약에 보이지 않아 아쉽다”고 지적했다.

후보들은 한목소리로 공교육 정상화를 통한 사교육 줄이기를 강조한다. 안 후보는 ▶교사 중심 교육과정 운영 ▶교사 1인당 학생 수 줄이기 등을 내용으로 하는 ‘학교 공교육지원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문 후보는 혁신학교를 전국적으로 확산할 방침이다. 후보들이 외치는 공교육 강조, 사교육 경감에 대해 방향은 옳지만 액션 플랜은 미흡해 보인다는 비판이 나온다. 혁신학교의 경우 전국적으로 시행하기엔 시기상조라는 여론이 적지 않다. 공교육의 질이 어떻게, 얼마나 좋아질 수 있을지 불확실하고 좋은 대학을 가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규제 중심의 대책은 현실성이 떨어지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다. 해 진 뒤 유치원생·초등생 사교육 금지(문), 학원 선행교육 금지책 마련(안) 등이 대표적인 예다.

해 진 뒤 사교육 금지는 위헌 소지가 있어 문 캠프 내부에서도 발표 여부를 놓고 마지막까지 격론이 벌어진 안으로 알려졌다. 학습권 침해와 풍선효과를 우려하는 학부모들의 목소리가 높다.

“왜곡된 사교육을 법으로 없앤다는 게 가능한가. 학생과 학부모에게 학교 선택권을 돌려주고 학교와 교사가 양질의 교육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방법부터 찾아야한다(이희범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사무총장).” “사회주의 국가도 아닌데 해 진 뒤 학원 가면 감옥에라도 보낼 건가. 아이들의 개성을 살려 줘서 열정적으로 공부할 여건을 마련해 주지 못했기 때문에 사교육 폐해가 두드러진 거다(최미숙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모임 대표).”

복잡한 대입전형을 간단하게 하겠다는 공약도 제도에 대한 대수술을 예고하고 있다. 박 후보는 ▶수시는 생활기록부, 정시는 수능 위주 ▶대입전형 계획 변경시 3년 전 예고 의무화, 문 후보는 ▶수능·내신·특기적성·기회균형 네 가지로 간소화 ▶수능은 자격시험으로 전환, 안 후보는 ▶수능·논술·내신·입학사정관 전형 네 가지로 간소화 등을 발표했다. 전형방법이 3289가지나 돼 수험생에게 혼란이 가중됐다는 지적을 반영한 것이다.

이에 대해선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올해 8월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현 입시제도는 40년 통틀어 최악의 작품”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던 손주은 대표는 “간소화는 좋지만 지금 세 후보 공약대로 내신을 전형에 중점 반영하면 사교육 근절은 불가능하다”고 내다봤다. 역시 간소화에 찬성하는 이만기 평가이사는 “내신을 배제하면 학교 운영이 힘들어진다”는 의견이다.

반면 김동석 한국교총 대변인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입제도를 들쑤시는 바람에 교육현장에선 혼란과 불안이 상당하다. 전문가들을 불러 브레인스토밍 하는 식으로 공약을 만들다 보니 현장과 멀어지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 밖에 ▶지역균형 선발에만 입학사정관제 도입 등 질 관리(문) ▶기회균등 전형을 정원 20% 이상(현재 11%까지 가능)으로 확대(안) 등은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특목고·자사고 폐지? 사회적 저항 클 것”
특목고·자사고(자립형사립고)에 관한 공약은 문 캠프 안이 가장 강경하다. 과학고를 뺀 외국어고·국제고·자사고를 단계적으로 일반고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가령 외고의 경우 대학 외국어계열 50% 이상 진학 등의 기준을 제시하고 이를 지키지 못하면 전환하는 식이다. 박 후보는 유지, 안 후보는 유지하되 학생 우선선발권을 없애고 추첨제로 바꿔 감소를 유도하는 방안을 냈다.

이에 대해서도 시각이 엇갈린다. “특목고는 사교육 문제의 주범이다. 일반고의 이류화·삼류화가 심각하다(손주은 대표).” “글로벌 인재를 키워야 한다고 해서 특목고를 만들었는데 이걸 폐지하는 건 밭에 있는 잡초를 뽑는다고 밭을 다 갈아엎어 버리는 격(김동석 대변인).” “특정 외고 출신들이 이미 소위 ‘이너서클(핵심 권력집단)’을 형성한 현실을 무시한다면 사회적 저항이 클 거다(이만기 평가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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