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연 칼럼] MB의 추억, 단일화의 추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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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7호 30면

대선을 한 달 앞둔 요즘 ‘MB의 추억’이 인기를 끈대서 영화관을 찾았다. 한 달 전 개봉된 독립영화인데 관객이 제법 많고 호응도 높았다. 5년 전 대선 유세 때부터 이명박(MB) 정부의 연대기를 스크린에 이식했다. MB의 허풍을 죽 나열하고 유권자는 거기에 속아 넘어갔다고 알리는 식이다. 영화는 그걸 ‘정산 코메디’라고 불렀다.

영화 속 주인공인 이명박 대통령은 힘이 넘친다. 그는 ‘점포 임대’ 전단이 나붙은 상가를 가리키며 “하늘이 두 쪽 나도 거덜난 경제를 살리겠습니다”라고 거듭 외친다. 그런 호언장담은 5년이 흐른 지금의 썰렁한 상가 영상과 교차된다. MB가 당시 대통령을 꾸짖는 말을 자신에게 향하는 말로 엮은 편집이 인상적이었다. 그럴 때마다 객석엔 한숨이 흐르고 신음이 터졌다. 혀를 차는 소리도 들렸다.

한 달 만에 관객 1만 명을 돌파했는데 독립영화치곤 꽤 흥행몰이를 한 편이다. 4년 전 대박 난 독립영화 ‘워낭소리’와 비슷한 기세란다. 그래선지 극장가엔 ‘남영동 1985’ ‘유신의 추억’ 등 추억 시리즈가 대기 중이다. 이 추세라면 ‘단일화의 추억’도 조만간 영화로 나오겠단 생각이 들었다.

정책이나 노선, 지지 세력과 정치 스타일이 완전히 다른, 아니 상충되는 두 후보가 선거 승리만을 위해 담합한 게 10년 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였다. 좌우 세력이 손잡고 공동정부를 만들겠다고 포장했는데, 투표 전날 단일화는 깨졌다. 그런 뒤에도 노무현 후보는 “공조 합의는 국민에 대한 약속”이라고 우파 정책의 이행을 공약했다. 그러곤 선거가 끝나자 ‘말 안 해도 다 아는 사실인 양’ 외면했다. 1차적으론 정몽준 지지자, 결국은 국민이 바보 같은 꼴이 됐다. 영화가 나오면 ‘MB의 추억’과 반응이 어슷비슷할 게다.

조연이라면 이에 맞선 이회창 캠프다. 당시 ‘창 캠프’에선 인기 있는 사람을 영입해 인기 없는 이회창 후보를 보완하자는 주장이 많았다. 각 분야의 젊고 개혁적인 인사들로 꾸린 ‘이회창 초대 내각’을 선거 전에 발표해 위기를 돌파하자는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현실화되진 못했다. 그 자리를 노리는 캠프 내 실세가 너무 많아 명단을 확정할 수 없어서였다.

문제는 오늘의 대선 드라마다. 자괴감 속에 코미디 영화를 보고 있지만 정치 현실은 코미디 재방송과 다를 게 없다. 오히려 5년 전의 MB식 거품 공약, 10년 전 단일화 스토리가 중층으로 꼬였다. 친노의 요란한 세몰이와, 그런 조직 동원에 밀린 상대편 항의도 과거와 판박이다. 그래서 투표일이 한 달 남았는데 누가 최종 후보인지조차 모르는 게 코미디의 추가 요소다.

돌이켜 생각해 보자. 2007년 대선 때 경제를 살리겠다고 공약한 후보는 MB만이 아니었다. 중요한 건 왜 MB의 ‘747 공약’이 선택되고 다른 후보의 경제 살리기는 묵살됐느냐는 거다. MB에겐 유능한 기업가의 실용 이미지가 있었다. 청계천 신화가 보태졌다. 하지만 더 결정적인 공로는 기존 정치권과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었다.

5년이 흐른 지금은 안철수 후보가 그런 이미지를 내세운다. 안철수 현상이란 건 기존 정치에 대한 환멸과 새 정치에 대한 갈망 이다. ‘박근혜와 문재인은 낡은 체제를, 난 미래가치를 대표하는 후보’라고 규정한 게 안철수의 대선 출마 변이다. 그래 놓곤 50일도 안 돼 후보 단일화란 낡은 정치공학을 들고 나왔다. 문재인 후보는 또 어떤가. 국민의 손으로 직접 뽑은 국민 후보가 단일화엔 왜 매달리나. 모두 정산 코미디감 아닌가.

‘아름다운 단일화’라고 주장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문·안 두 후보가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보다 ‘왜 이기려고 하나’를 설명했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단일화가 되려면 왜 단일화가 새 정치인지왜 단일화를 해야 하는지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밥그릇 싸움보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가능한 일이다. 5년 후 ‘의 추억 2’가 나오지 않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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