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혜걸의 의학 프리즘] 약물 부작용 '알아도 모른 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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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스테롤 저하제인 리포바이(바이엘 본사 명칭은 바이콜)의 국내 판매가 최근 중단됐다.

드물지만 이 약을 복용한 사람에게서 근육이 썩는 부작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만 31명이 사망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9년 11월 이후 10만 팩 이상 판매됐다. 그러나 당국과 바이엘 코리아측은 아직 국내에서 리포바이의 부작용이 보고된 바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언론 보도 이후 근육통과 고열, 까만 색깔의 소변 등 리포바이의 부작용과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들의 전화가 서너 통 이상 걸려온 것으로 보아 실제 부작용 사례가 국내에서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화제를 불러 일으킨 신약이 예기치않은 부작용으로 시장에서 퇴출된 사례는 여럿 있다. 식욕을 떨어뜨려 살을 빼는 기적의 비만치료제 펜플루라민은 심장과 폐에 대한 독성으로, 난치성 당뇨를 효과적으로 치료해온 신개념 당뇨치료제 레줄린은 간에 대한 독성으로 모두 허가가 취소됐다.

이들 모두 미국 식품의약국의 까다로운 임상시험 절차를 거쳐 허가가 난 약이지만 시판 후 부작용이 나타나 판매가 중단된 사례다.

유사한 사례는 국내에서도 있었다. 위장약 시사프라이드 제재가 드물지만 심장에 치명적인 부정맥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부터다.

시사프라이드는 위장의 움직임을 촉진해 소화불량 증상을 개선하는 약품으로 우리나라 의사들이 가장 많이 처방한 약이기도 하다.

문제는 리포바이나 시사프라이드 모두 미국에서 먼저 부작용이 규명돼 허가취소가 내린 뒤에야 국내에서 뒤늦게 판매중지나 처방제한 등 조치가 발동됐다는 것이다.

약물 부작용을 감시하는 체계가 허술한 탓이다. 실제 부작용이 발생해도 이를 보고하고 당국의 조사에 따라 시판금지 등 자발적 조치를 내린 사례는 거의 없다.

우리나라는 약을 좋아하는 국민성 때문에 세계적인 약물 다소비 국가로 알려져 있다. 약물 부작용 감시체계를 강화해 사전에 약화(藥禍)사고를 방지해야할 것이다.

홍혜걸 기자 ·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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