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공군은 쇼퍼홀릭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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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정용수
정치부문 기자

지난 8일 국회 국방위 예산결산소위원회가 공중급유기 도입을 위한 착수금으로 467억원을 편성했다. 원래 기획재정부가 삭감했던 예산을 국회가 되살린 것이다. 공중급유기 도입을 숙원사업으로 여겨온 공군은 마치 죽은 자식이라도 살아난 듯한 분위기다.

 공중급유기는 전투기나 폭격기를 위한 하늘의 주유소다. 공중에서 급유를 받으니 작전반경은 크게 넓어진다. 공군은 이 거 한 대만 있으면 전투기 20대쯤 더 들여온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따져보자. 공중급유기가 당장 예산편성을 해야 할 정도로 화급한 것인지. 재정부는 우리 국방 현실을 고려하면 다른 사업이 더 급하다며 공중급유기 예산을 유보했다. 국방예산은 한정돼 있고, 쓸 데는 많으니 일단 급한 불부터 끄자는 뜻이었다. 재정부가 지적한 ‘급한 불’은 한둘이 아니다. 6·25 때 쓰던 박격포가 박물관이 아닌 최전방에 아직도 배치돼 있고, 일반전초(GOP)에선 적외선카메라 대신 5만원짜리 PC 채팅용 카메라를 쓰고, 병사들은 한 끼에 2000원짜리 밥을 먹고…. 그뿐이 아니다. 해군 최정예 이지스함은 미사일 없이 발사대만 싣고 다닌다. 미사일 살 돈이 없어서다.

 공군에도 당장 꺼야 할 ‘급한 불’이 많다. 우리 공군 조종사들의 연간 평균 비행시간은 137시간이다. 영국(210시간), 미국(189시간)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다. 조종사들이 게을러서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기름값이 올라서”라는 게 공군의 답변이다. 전투기에 장착한 무기는 어떤가. 간판 무기인 사거리 278㎞의 슬램-ER 미사일은 공군 전체에 40여 발뿐이다. 보유 중인 F-15K 60대에 한 발씩도 못 단다. 유도 무기 보유량은 목표치의 65% 수준이다.

 공중급유기 도입론의 허점은 또 있다. 전투기의 운용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번 작전에 투입돼 실탄을 소진한 전투기들에 공중급유를 해본들 무슨 소용인가. 하늘에 떠 있기만 하면 전투력이 강화되는 건가. 또 한번 비행하고 나면 땀 범벅일 정도로 체력을 소진한 전투 조종사들의 피로도는 어쩔 셈인가.

 공중급유기 도입엔 1조원 넘게 들어간다. 이미 공군은 11월 말 공중조기경보통제기 4대를 실전에 배치한다. 8조4000억원을 들여 추진하는 차세대(F-X) 전투기 사업도 기종 선정을 앞두고 있다. 14조~15조원에 달하는 한국형 중형 전투기 개발(KFX)도 남아있다. 조 단위 무기 도입이 시리즈로 진행되는 셈이다. 이를 두고 무기 도입 사업을 담당하는 한 당국자는 “공군은 하나를 사면 또 다른 것을 사달라고 한다”고 말했다. 공군은 마치 쇼핑 중독자(쇼퍼홀릭)라도 된 듯하다는 얘기다. 이쯤 해서 뭐가 더 급한지 찬찬히 뜯어볼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