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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 서울-워싱턴 정말 위기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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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미국에서 볼 때 서울발 뉴스들은 갈수록 언짢은 내용을 담고 있다. '북한의 핵 개발 재개'는 그 중 가장 나쁜 소식일 것이다. 그 가운데 한.미간의 간극이 점점 더 벌어진다는 소식은 같은 무게를 가진 고민거리다.

사실 지난 40여년간 양국간의 불화는 정례적으로 반복되는 양상을 보였고 이는 두나라 관계의 특징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전에는 북한의 위협에 대한 양국의 공감대가 정책을 적절히 조정해주는 역할을 했다. 오늘날의 문제점은 동맹관계의 중심 이슈들에 대해 양국 정부가 극도로 상반된 시각을 드러내고 이를 토대로 정책을 만들어간다는 데 있다.

북한 정권에 대한 미국의 반감은 북한의 최근 행동, 즉 제네바 합의 위반 때문에 더욱 심해졌다. 북한 정권을 교체하는 것이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공공연한 목표는 아닐지라도 북한이 붕괴됐다고 이 행정부가 유감스러워 할 것 같지는 않다.

한국은 북한의 점진적 개혁을 돕고, 북한 붕괴가 초래할 최악의 사태를 예방한다는 목표 아래 북한에 대해 관용적으로 나오고 있다. 한국은 부시 행정부가 사라졌으면 하는 북한 정권도 지지하고 그 정권의 점진적 개혁도 지지하고 있다.

*** 北核해법의 '모럴 해저드'

9.11테러 이후 미국은 비핵화(非核化)에 높은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핵 보유 열망을 드러내는 평양을 돈으로 눌러보려 했던 전임 행정부의 시도를 탐탁치 않게 여긴다.

이런 식의 일처리는 '모럴 해저드'를 조장하는 것이라고 꼬집는다. 북한이 제네바 합의를 위반했다고 시인했다는 사실로부터 '그러면 앞으로 북한이 새로운 약속을 한다 해도 그걸 어떻게 믿겠느냐'는 새로운 의심을 제기하고 있다.

반면 한국 정부는 최근의 북한 핵 활동에 당황하긴 했지만 핵 개발 자체보다 미국의 대응방식에 더 놀라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이 '채찍'을 휘두르는 경향을 보인다면 한국 관리들은 '당근'을 선호하는 것 같다.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은 주한미군의 존재가 한반도의 전쟁 억제에 기여하며, 궁극적으론 남북 평화협상에서 '협상 카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미군의 존재가 주둔국에 사회.정치적 부담이 된다는 사실에 둔감한 경향이 있다.

그러나 북한을 더 이상 공포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 한국인들에게 미군은 점점 불편한 존재가 되고 있다. 주한 미군의 존재를 주권 모독으로 받아들이고 한국 정치를 간섭하는 방해물로 보는 견해까지 생겨났다.

가장 혼란스러운 것은 양국 정부가 적절한 상호조율 없이 대북정책을 마련하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최근 부시 행정부는 '맞춤형 대북 봉쇄'정책을 발표했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즉각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했다.

요즘 서울발로 "한국 정부가 미국과 북한을 '중재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지만 이 방안이 워싱턴에서 환영받지는 못할 것 같다.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은 한반도에서 논쟁이 벌어진다면 그건 남북사이에나 있을 일이라는 식으로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현실이 그렇지 않게 된다면 군사동맹의 근거는 빈약하게 될 것이다.

미국과 한국의 지도자들이 침착하게 근본을 되돌아봐야 할 시간이 왔다. 지금까지 전개된 사태는 북한에만 이익이 될 뿐이다. 양국의 의견차이가 신속하게 해소되지 않으면 한.미동맹을 지탱하는 상호신뢰가 붕괴될 위기를 맞을 것이다.

이번 주 워싱턴에서 열리는 대북 정책조정감독그룹(TCOG)회의는 양국에 북한문제에 대한 공통의 이해와 전략을 찾을수 있는 기회다. 한국 대통령이 파견하는 특사도 또 다른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 정책 상호조율 왜 안하나

미국은 '한국 정부 없는 효과적 대북 정책은 없다'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한국도 '미국이 사태의 근본원인'이라는 식으로 생각하거나, '미국이 북한에 양보해야 한다'고 기대한다면 지지를 얻지 못할 것임을 유념해야 한다.

1995년 오키나와 주일미군의 초등학생 성폭행 사건으로 미.일동맹이 신뢰의 위기를 맞았을 때 미국은 일본 정부의 요구를 수용해 주둔 위치, 주둔군 협정 등을 모두 재검토한 적이 있다.

양국의 시의적절한 행동은 동맹관계를 거듭나게 하는 데 기여했다. '나이(Nye) 이니셔티브'라고 하는 당시의 정책은 주한미군에도 참고할 만한 정책이 될 것이다. 그러나 가장 급박한 과제는 양국이 통일된 대북정책을 개발하는 것이다.

마이클 아머코스트

◇약력=미 컬럼비아대 정치학 박사, 국무부 정무차관, 주필리핀.주일 대사, 브루킹스연구소장 역임. 현재:스탠퍼드대 아태연구센터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