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움직이는 미 정계 '인물계보' 분석

중앙일보

입력

4백명에 달하는 미국의 오피니언 리더들의 정치사상 계보를 효과적인 방식으로 꿰뚫고 있는 신간 『누가 미국을 움직이는?뻗?읽다 보면 누구라도 저자가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질 법하다.

일본인 특유의 치밀한 정리벽을 이용해 미 정계의 역학(力學) 구도를 신보수주의.공화당 보수본류에서 흑인이슬람.급진좌파에 이르기까지 사상별로 정리한 논문 형식이면서, 개인적 시각까지 노출시키는 서술도 거침없기 때문이다.

저자인 도코하가쿠엔(常葉學園) 대학의 소에지마 다카히코(48) 교수는 정치철학 전문연구자는 아니다. 시사평론가이자 국가 전략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미국의 주요 정치.학술.시사 잡지와 TV 정치토론 프로그램, 그리고 미국인 친지들을 통해 파악해온 정보를 토대로 이번 작업을 했다.

흔히 알고 있는 미국의 양대 정치세력은 부유층.백인종의 지지를 받는 '보수' 성향의 공화당과, 서민층.유색인종의 지지를 받는 '진보' 성향의 민주당이다.

그러나 미 정치가 그렇게 단순하게 굴러가는 것은 아니라고 저자는 파악한다. 실제 생활에 미치는 영향의 범위나 내용은 달라도 우리네 학연.지연처럼 그들에게도 복잡한 계파가 존재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기본틀은 세 가지다.

첫째, 정치이데올로기에 따른 보수파와 자유파의 구분이다. 둘째, 종교적인 파벌이다. 셋째, 인종 혹은 민족에 따른 나뉨이다.

이 요소들을 입체적으로 조화시켜야만 미 정계에 대해 올바른 밑그림을 그려볼 수 있고, 그런 뒤에야 세계 패권국인 미국의 국제정책을 이해하고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논지다. 이를테면 오랫동안 인권을 억압해온 '악의 제국' 소련 공산주의 진영을 물리치기 위해선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던 진 커크패트릭 등 민주당의 일부 지식인들은 1980년대 공화당으로 배를 옮겨탔다.

레이건의 각료가 된 이 '배신자' 들은 공화당 내에 '신보수주의' 라는 새로운 파를 형성하고 소련의 붕괴를 촉진하는 데 일조했다.

이후엔 걸프전 등을 통해 미국이 세계경찰 노릇을 해야 한다는 글로벌리즘이 기승을 떨쳤지만, 곧 '국내문제 우선주의(isolationism.고립주의) ' 를 바탕으로 한 반(反) 글로벌리즘이 고개를 든다. 이에 초조해진 뉴욕의 금융인들은 이런 움직임을 막기 위해 서민파인 민주당의 빌 클린턴을 대통령으로 내세움으로써 대중의 불만을 가라앉히려 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미국의 정치 연구소들과 평론지, 방송프로그램들의 성향까지 저자의 관점에서 분석해놓은 부록도 핸드북으로서 그만이다. 동시에 미 정치사상의 구도를 크게 에드먼드 버크(자연법파) , 존 로크(자연권파) , 제레미 벤담(자유의지론파) 등 세 명의 영국 대사상가 간의 대립으로 풀어 보는 저자의 시각은 이 책이 평면적인 인물백과사전에 그치지 않게 만든다. 미국 정치사상사의 전체 숲을 묘사하는 가이드 역할로 훌륭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집필 동기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이 미묘한 시기에 반미(反美) 를 외치는 사람들이 미국 정치 내부의 복잡한 정치역학부터 먼저 이해했으면 한다. 우리들은 아직도 '적' 을 모르고 있지 않은가. " 이 구절의 '우리' 는 '한국인' 으로 바꿔 읽어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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