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폴드-메츠거 피아제 CEO에게 듣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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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폴드-메츠거 피아제 CEO

“‘울트라 신 무브먼트’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부터 피아제는 그냥 ‘시계 제작자’가 아니라 ‘고급 시계 제작자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스위스 고급 시계 브랜드 ‘피아제’의 필립 레오폴드-메츠거(57) 최고경영자(CEO)는 자사의 시계가 “세계 고급 시계 시장에서 기념비적인 모델을 자랑할 수 있게 된 것 역시 울트라 신 덕분”이라며 얇은 무브먼트에 대해 거듭 강조했다. 최근 서울을 방문한 그를 삼성동 파크하얏트 호텔에서 만났다. 최고급 시계 트렌드 ‘울트라 신’에 대해 물었다.

-우수한 시계 제작 기술을 갖춘 브랜드들이 점차 ‘울트라 신 무브먼트’에 공을 들이고 있다. 특히 이 분야에서 업계 선두를 자임하고 있는데 긴장되지 않나.

“울트라 신에 대한 최근의 관심은 오히려 때늦은 감이 있다. 응당 받아야 할 관심이었는데 이제야.(웃음) 피아제는 1874년 탄생한 이후로 1943년까지 시계의 핵심 동력 장치인 ‘무브먼트’만 생산해 왔다. 50년대는 축적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해 ‘9P’‘12P’처럼 울트라 신 무브먼트를 내놨다. 모델 이름 ‘알티플라노’는 울트라 신 무브먼트를 탑재해 98년 선보인, 브랜드의 대표 모델이다. 남들이 이제 울트라 신 무브먼트에 눈을 돌리고 있지만 우린 기술적으론 브랜드 역사 138년의 절반쯤을 여기에 쏟아 왔다. 우리의 뿌리와도 같은 기술인 셈이다. 그러니 피아제가 ‘울트라 신의 일인자’로 불리는 것이다. 알티플라노 컬렉션이 나온 지도 15년째다. 다양한 모델을 보유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과거에도 우리가 가장 잘했고, 현재에도 우리가 가장 잘하는 분야다.”

-피아제만 울트라 신을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물론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집중하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피아제는 항상 제품을 얇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다른 브랜드가 울트라 신 무브먼트를 만들 수 있더라도 그들은 여기에 집중하는 게 아니다. 언젠간 피아제보다 더 얇게 만든 무브먼트가 등장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전에도 피아제가 지금 만드는 것보다 더 얇은 무브먼트가 다른 브랜드에서 나왔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얼마나 더 얇은가가 아니고 잘 작동하느냐, 기술적으로 완벽한가 하는 점이다. 제품의 신뢰도는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말이다.”

-울트라 신 무브먼트가 트렌드라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여러가지 기능이 복합되면서 시계가 점점 두꺼워지기도 했다.

“극과 극이 공존하는 시대라고 생각한다. ‘파네라이’ 같은 브랜드는 피아제와 아주 다르다. 나 역시 골프를 칠 때는 파네라이처럼 두꺼운 시계를 차곤 한다. 하지만 업무를 볼 때는 울트라 신 무브먼트가 적용된 ‘알티플라노’를 찬다. 고객의 욕구는 다양하고 그것을 충족시키려면 한 가지 제품만 만들 순 없는 노릇이다. 피아제도 다른 브랜드처럼 두껍게 만드는 것은 당연히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면 시계가 두꺼워지면서 투박해지기 때문에 계속해서 울트라 신과 결합한 ‘하이 컴플리케이션 시계’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일할 땐 얇은 시계, 스포츠 활동 등을 할 땐 두꺼운 시계를 권한단 말인가.

“울트라 신은 언제든 착용할 수 있다. 물론 다양한 시계를 갖고 있다면 때와 장소에 맞게 쓰는 것도 좋겠지만 모두가 그럴 순 없지 않겠나. 얇은 시계는 그 자체로 대단히 우아하고 세련된 모양새라 범용으로 쓰기에 더욱 적합하다.”

-아무리 고급 시계라곤 하지만 가격 장벽이 너무 높다. 더 좋은 제품을 더 많은 소비자가 누리게 할 순 없을까.

“명품(luxury)과 효율성(efficiency)은 양립할 수 없다. 피아제는 1년에 약 2만4000개의 시계를 만든다. 결코 많은 숫자가 아니다. 우린 제품을 찍어내는 제조업체가 아니다. 그렇게 될 수도 없다. 하지만 피아제 제품 모두, 피아제 ‘매뉴팩처’(※고급 시계 업계에선 시계 제조가 이뤄지는 곳을 공장(factory)이라 부르지 않는다)에서 만들어 낸다. 모든 디자인 과정부터 완제품 생산까지 한 곳에서 이뤄지는, 통합(integrated) 매뉴팩처다. 아마도 이 정도로 수직계열화 돼 있는 매뉴팩처를 운영하는 고급 시계 제작업체는 이제 전 세계에서 피아제를 포함, 많아야 3곳 정도에 불과하다. 브랜드가 자체 제작하지 않고 (여러 곳에서 부품을 사다가) 조립하는 시스템이 많은 것이다. 하지만 럭셔리 고객이, 럭셔리를 사면서 이런 제품을 사는 것은 뭔가 맞지 않는다. 생산 과정이 통합돼 있을수록 품질이 높아진다는 게 피아제의 믿음이다. 자사의 매뉴팩처에서 수공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격이 높은 것이다.”

-요즘 고객은 합리적인 가격의 준명품, 즉 ‘매스티지’를 좇기도 한다.

“그 단어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마케팅이 우선시 되니 그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제품이 별로여도 마케팅이 훌륭하면 살아남는 것, 그것이 매스티지인 것 같다.”

-매스티지가 마케팅으로 소비자를 속인단 얘긴가.

“매스티지 브랜드는 제품보다 마케팅을 우선한단 얘기다. 훌륭한 제품과 훌륭한 마케팅이 접목돼야 진짜 시너지 효과가 나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럭셔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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