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이 익숙함으로 변하는 순간의 세밀한 포착.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가 개봉 4주 만에 불과 16개 상영관에서 4만 관객을 돌파해 화제다. 여성의 감성을 섬세하게 그려낸 영상과 음악이 입소문을 타고 여성 관객들의 뜨거운 지지로 이어지고 있는 것. 캐나다의 배우 겸 감독 사라 폴리는 전작 ‘어웨이 프롬 허’에서 기억을 잃어가는 부인을 지켜보는 남편의 시선을 통해 보여준 삶에 대한 예리한 통찰에 이어 인생의 또 다른 단면을 구석구석 조명한 연출로 찬사를 받고 있다.
결혼 5년차 프리랜서 작가 마고는 출장길에서 만난 이웃집 남자 대니얼에게 끌린다. 주변을 맴도는 매력남 대니얼과 착한 남편 루 사이에서 방황하다 새로운 사랑을 택하나 그 또한 금세 퇴색해 간다는 전개는 흡사 드라마 ‘사랑과 전쟁’처럼 진부하지만, 그저 불륜의 허무한 뒤끝 정도로 치부하기엔 이 영화가 담고 있는 감성이 사뭇 특별하다. 사랑의 설렘과 익숙함의 국면들을 감각적으로 조명하는 것이 과연 무엇이 진짜 사랑이냐는 상투적인 질문을 던지기 위함이 아니라 문제의 중심에 선 여인의 내면을 비추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소규모 개봉에도 4만 관객 돌파,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
공항에선 휠체어를 타야 할 정도로
“당신은 맨날 닭요리만 하잖아.” 평온한 듯 묘한 엇갈림의 연속인 결혼생활의 권태가 진정 닭요리 전문가인 남편의 정체성으로 인한 걸까? 마고의 텅 빈 시선이 인상적인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따사로운 오후 오븐에 기대어 머핀이 익기를 기다리는 권태로운 일상의 배경이 되는 남자를 흐릿한 뒷모습으로 처리한 것은 그의 정체가 결코 중요치 않기 때문이다. 그녀의 불안과 결핍의 이유는 작가로서 진짜 쓰고 싶은 글이 아닌 관광지 홍보자료나 쓰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불만과 그로 인한 소외감이 아닐까. 그녀의 텅 빈 시선은 오롯이 자신을 향해 있으니 말이다.
“인생의 빈틈을 일일이 메울 순 없어”
감성영화의 공식을 깨는 극사실적 묘사들은 이것이 바로 가감 없는 인생의 진실임을 웅변한다. 판타지 러브스토리라도 펼쳐질 법한 아름다운 호숫가 마을 풍광에 중년 여성들의 처진 살덩이가 겹치고 이슬만 먹고 살 듯 귀여운 여인 미셸 윌리엄스가 스스럼없이 변기에 앉는 순간은 시쳇말로 확 깬다. 사랑이라는 찰나의 환상을 거쳐 권태로운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맞물리는 수미일관의 구조 또한 직설적이다. 환상과 현실 사이, 삶은 제자리를 맴돌 뿐이다.
찰나의 환상일지언정 영화에 그려진 사랑의 감각은 황홀의 경지. 국경을 초월해 여인네들의 욕망을 불사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30년 후 오늘, 당신과 키스할래요”라는 대사의 로맨틱한 울림이나 아무도 없는 수영장에서 물살을 가르는 두 사람의 아찔한 동선,
그토록 짜릿했던 놀이기구에서 홀로 쓸쓸한 미소를 짓는 엔딩은 해답을 제시하지 않기에 더욱 리얼하다. 해피엔딩이냐 새드엔딩이냐의 판단은 고스란히 관객의 몫으로 남겨지고, 마고의 혼돈 또한 각자의 문제로 돌아온다. 마고의 대사처럼 살다 보면 가끔 ‘이유 없이 울고 싶어지는, 누가 어떻게 해줄 수도 없는 순간’이 있다. ‘살아있으니까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일’이란 걸 알면서도 때론 통제할 수 없기도 하다. “인생엔 빈틈이 있게 마련이야. 그걸 미친 사람처럼 일일이 메울 순 없어.” 알코올 중독자 올케가 남긴 명언만이 오래도록 뇌리를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