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쎄이예스' 의 박중훈

중앙일보

입력

"네 아내를 죽여달라고 말해! 말하란 말이야" 온 몸에 피칠갑을 한 채 광기어린 눈으로 남편(김주혁)을 다그치는 모습이 심상찮다.

최근 미국의 조너선 드미 감독의「찰리의 진실」에 출연, 한국 배우로는 최초로 할리우드로 진출해 화제를 모은 배우 박중훈(35)이 `연쇄 살인마'로 국내 스크린에 복귀했다. 김성홍 감독의「쎄이예스」에서다.

박중훈이 정통 스릴러 영화에서 그것도 잔혹한 살인마라니. 그의 코믹 연기에 박장대소했던 관객들이라면 박중훈의 연기 변신에 `반신반의'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17년 연기 경력은 저절로 생긴 게 아니다.

평화롭던 부부(추상미-김주혁) 앞에 느닷없이 나타나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두사람의 사랑을 시험하는 `살인마'를 보고 있노라면 정말 박중훈이 맞는가 싶다.

"이미지를 바꾸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언젠부터인가 영화를 찍으면서 제 연기가 식상하다고 느낀 적이 있었는데 `관객들은 오죽 할까'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그때부터 장르를 가리지않고 신선한 역할을 맡기로 결심했지요." 시사회를 마친 뒤 박중훈은 고생했던 영화 촬영 기간이 스쳐지나가는 듯 "여태껏 찍은 작품 중 가장 힘들었던 영화"라고 털어놓았다.

"제 역할은 계산된 연기보단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역입니다. 액션보다는 주로눈과 표정으로만 연기를 하다보니 `컷'소리가 날 때면 눈이 저절로 감기면서 쓰러질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거든요. 또 같은 장면을 매번 다른 버전으로 3-4번 찍다 보니까 힘도 배로 들었습니다. 이 정도면 출연료 3배로 줘야 되는 거 아닙니까"

혼신을 다했지만 아쉬움도 남는 듯 했다. 연기엔 베테랑인 그지만 아무런 이유없이 폭력과 살인을 저지르는 주인공 M의 내면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 때때로 `M'이 내뱉는 대사 속엔 살인마의 이미지보다 재치와 유머로 가득한 `끼'를 꾹 참는 듯한 인간 박중훈의 모습이 더 많이 묻어났다.

옆에 있던 김감독은 "이유있는 폭력은 무섭지 않다. 마치 스토커처럼,현대인들이 아무런 인과 관계없이 겪게 되는 폭력과 그러한 폭력의 전이에 관해 이야기 하고싶었다"고 말했다.

배역도 그렇거니와 컴퓨터 그래픽을 한 장면도 쓰지않기로 한 김감독의 고집때문에도 배우들은 위험한 액션 연기를 감수해야 했다고 한다. 빗 속 자동차 추격신이나 벼랑 끝에 반쯤 걸린 차 속에서 탈출하는 장면, 트럭이 길 위에 쓰러져있는 김주혁 앞으로 돌진하는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눈 앞이 아찔하다고 했다.

이쯤에서 철저히 배우 위주로 운영되는 할리우드 선진 시스템을 경험한 박중훈의 생각이 궁금했다.

열악한 국내 제작 환경에 관한 `일침' 한마디를 기대했는데 대답이 걸작이다.

"라면가게는 라면가게대로, 호텔은 호텔대로 다 그 나름대로 맛이 있는 것 아닙니까. 제가 속한 곳이 라면 가게인데 어쩌겠습니까. 그 곳을 발전시키려고 노력해야지."

잇몸이 상해서 두 달 전부터 치아교정기를 끼고 있다는 박중훈은 할리우드 진출에 대한 사람들의 높은 관심이 쑥스럽다는 듯 조심스럽게 웃었다. (서울=연합뉴스) 조재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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