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강세로 3분기 영업이익이 5700억원가량 줄었다.”(삼성전자 관계자)
“요즘 같은 환율만 유지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대한항공 관계자)
‘강한 원화’에 기업 희비가 엇갈린다. 수출과 수입이 많은 한국 기업에 환율은 중대 변수다. 삼성전자처럼 수출이 많은 기업은 원화가치가 오르면 불리하다. 반대로 대한항공 같은 항공사는 원화가 강할 때 한결 형편이 낫다. 대한항공은 빚의 60~70%가 달러 부채다. 외국에서 항공기를 도입하는 업종 특성 때문이다. 유가에도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원화 강세는 대한항공에 이래저래 호재다.
28일 우리투자증권에 따르면 달러당 원화 가치가 50원 오를 때 삼성전자 순이익은 10% 줄어든다. 우리투자증권은 올해 원화 가치가 1108원에서 1058원으로 오른다고 가정하고 146개 코스피·코스닥 주요 상장사 실적에 미치는 영향을 추정했다. 실제로 올해 말 달러당 원화가치가 1058원까지 오른다고 전망한 것은 아니다. 어떤 기업 주가가 환율에 민감한지를 분석하기 위한 가정이다.
원화가치가 50원만큼 오를 때 순이익이 가장 많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은 LG디스플레이였다. LG디스플레이는 올해 예상 순이익이 3482억원이지만 원화가치가 50원 오르면 3320억원이 줄어들 것으로 예측됐다. 순이익이 95.4%나 감소하는 것이다. 삼성테크윈(-19.2%), 금호석유(-17.8%), KPX화인케미칼(-15.4%) 등도 순이익이 급감할 것으로 분석됐다. 대우조선해양(-10.3%)과 SK이노베이션(-10.2%), 삼성전자(-9.6%)도 영향을 많이 받는 기업이다.
삼성전자의 올해 예상 순이익은 21조6239억원이지만 원화가치가 50원 오르면 순이익이 2조760억원(9.6%)이나 줄어들 것으로 분석됐다. 매출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는 올해 197조9754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보이지만 원화가치가 50원 오르면 5조2220억원(2.6%)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수출을 많이 하는 기업이다. 원자재를 수입하기도 하지만 수출로 들어오는 달러화가 구매 비용으로 나가는 원화보다 많아 원화 강세가 반갑지 않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기아차는 순이익이 7.5%, 매출이 4.0% 각각 줄고 현대차는 순이익 6%, 매출은 2.5% 각각 줄어들 것으로 관측됐다.
공영운 현대차 전무는 “자동차는 수출 비중이 막대하고 부품 국산화율이 95%에 이르러 원화 강세의 피해를 고스란히 본다”며 “내년엔 각종 전문기관의 전망보다 훨씬 더 보수적으로 환율을 내다보고 사업계획을 짤 것”이라고 말했다.
웃는 기업도 있다. 석유나 원자재 등을 대량 수입해 쓰는 운송이나 제철업종은 이익이 늘어난다. 대한항공의 올해 예상 순이익이 4081억원이다. 하지만 원화가치가 50원 오르면 순이익이 82.8%, 3380억원 더 늘 것으로 분석됐다.
나덕승 대신증권 연구원은 “원화가 강세이면 내국인의 해외여행 부담이 줄어 출국자가 늘어나는데 내국인 출국자가 전체 여객 수요의 60% 이상”이라며 “항공업은 원화 강세의 긍정적 효과가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업종”이라고 말했다. 해운사도 원화강세에 웃는다. 해운업체는 선박을 들여올 때 대규모 외화 부채를 진다. 원화가 절상되면 이런 외화 부채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원화가치가 50원 오르면 한진해운의 순이익은 70.5% 늘어날 것으로 분석됐다. 원재료를 수입하는 포스코 역시 순이익이 18.9% 증가할 것으로 예측됐다.
환율 움직임에 무덤덤한 기업도 있다. 소매유통이나 통신서비스 등 내수기업이 대표적이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해외수주가 많은 건설업종도 뜻밖에 달러당 원화가치에 민감하지 않다. 한국 건설사가 수주경쟁을 하는 곳이 대부분 일본과 유럽 업체여서 달러보다는 엔이나 유로 환율이 더 중요하다. 정유사에도 환율은 동전의 양면이다. 원재료인 원유를 수입하므로 외화부채가 많지만 수출도 많기 때문이다. 전문가는 원화 강세 자체보다 변동 속도가 기업에 중요하다고 본다.
강현철 우리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수출 이익이 줄겠지만 그 일부는 내수업종으로 옮겨간다”며 “기업이 헤지를 통해 환율 등락 위험을 관리하므로 원화가치가 서서히 오른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