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재벌의 진로] 2. 경영권 프리미엄 줄여야

중앙일보

입력

1997년 일본의 한 신문에 포드자동차의 경영권에 대한 기사가 나왔다. 이 신문은 포드 가족이 주식의 40%를 보유하고 있는 포드자동차가 다시 오너 기업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보도했다.

사내이사 4명 중 트로트먼 회장을 제외한 3명이 에드셀 포드 부사장 등 포드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1902년 설립된 포드는 79년 필립 골드웰 회장이 취임하기까지 77년을 포드 가족이 지배한 기업이었다. 이후 줄곧 전문경영인이 회장으로서 경영 전반을 총괄하고 있는 상황에서 포드 일가가 다시 경영의 전면에 나오려 든다는 얘기였다.

그만큼 경영권에 대한 소유자의 관심은 클 수밖에 없다. "내가 설립한 기업을 내가 경영하겠다" 는 데 반대할 명분을 찾기도 쉽지 않다. 자본시장이 발달한 미국도 소유의 분산과 전문경영인의 양성을 통해 전문경영인 체제가 득세하기 시작한 것은 50년대부터였다. 근대 기업의 시발을 1870년대라고 보면 80여년을 소유자가 직접 대기업을 경영하는 '소유경영자 체제' 였다.

한국 재벌의 경우 기업의 역사도 짧다. 자본시장의 발달도 느려 소유 분산도 미국 만큼 안돼 있다. 회계나 경영이 아직도 불투명해 경영자가 업무추진비나 기밀비 등 회사 돈을 개인 용도로 사용해도 쉽게 알아낼 수가 없다.

이처럼 경영권을 가질 경우 얻을 수 있는 프리미엄이 아주 크다. 송홍선 박사의 학위논문(서울대) 에 따르면 경영권을 가질 경우 얻어지는 프리미엄이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의 10배, 영국의 7배, 독일의 4배 정도다. 아무리 오너에게 경영에서 손을 떼라고 한들 잘 될 수 없는 구조다.

이유는 또 있다. 지금처럼 경영이 불투명한 상황에서는 경영자의 파워가 소유자의 그것보다 클 수밖에 없다. 아무리 감시한다고 한들 숨길 수 있는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경영자를 감시하는 비용이 크다면 소유자가 직접 경영할 수밖에 없다는 경제이론까지 나올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는 오너에게 충성하는 가신(家臣) 같은 사람을 최고경영자로 앉힐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삼성경제연구소의 최인철 박사는 "경영권이 없는 대주주는 결국 전문경영인의 충성심과 같은 인간적 유대에 기댈 수밖에 없지만 너무 불확실한 담보" 라고 말한다. 사람 마음은 언제라도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80년대 중반 범양상선의 박건석 회장이 전문경영인과의 분쟁 끝에 자살한 예도 있다.

요즘과 같은 상황에선 최고경영자들이 우리 사주조합을 활용하거나 소액주주.기관투자가들과 연대해 지분율로도 대주주에 대항하기가 훨씬 쉬워졌다. 대주주가 최고경영자를 해임할 경우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얘기다.

한국경제연구원 황인학 박사는 "오너가 단순히 대주주로서의 권리만 행사할 경우 궁극적인 경영자 통제수단인 경영자의 임면권이 제대로 작동되기 어려울 것" 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재벌의 오너들인만큼 쉽게 경영권을 내놓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을 다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는 오너들이 경영권을 내놓고 싶을 때 명예롭게 할 수 있도록 어떻게 법과 제도를 바꿔야 하는지, 그런 환경은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를 생각할 때다. 정광선 교수(중앙대) 는 "대주주가 주주로서의 권한을 행사하려면 사외이사라든가 사내이사 등 이사회 멤버로 활동하면서 책임도 지고 권한도 행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 말했다. 대주주가 이런 식으로 경영에 참여하는 것을 나쁘게 볼 이유는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최인철 박사는 대안으로 지주회사를 제안했다. "대주주는 최고경영자가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감시해야 하는데 그런 조직으로서는 현재까지 지주회사가 유일한 방안" 이라는 이유에서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정교수는 "이사회와 주주총회의 권한을 더욱 강화하는 등 지배구조를 개선하면 이런 프리미엄은 상당 부분 없앨 수 있다" 고 제안했다.

송박사는 "기업인수.합병 시장의 활성화 등을 통해 소유경영자가 프리미엄에 안주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회사 재산을 남용하다가 자칫 기업을 통째로 날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다른 학자는 오너의 마인드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자신은 지금 물러나도 언젠가 능력있는 자손들이 다시 경영권을 찾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포드의 사례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