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주택정책 '서민은 봉'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이맘 때 중앙일보는 서울.수도권 전세 문제가 심각하다고 1면 머리기사로 다뤘다.

전셋집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고 값도 많이 올라 대책을 마련하라고 정부에 촉구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지금, 사정은 더 나빠졌다. 전세파동은 지방으로 확산하고 잠잠하던 매매값마저 밀어올려 '못 가진 사람들' 의 어깨를 누르고 있다.

정말 대책이 없는 것일까. 1998년 출범한 이 정부는 지금까지 12차례의 부동산.주택경기 활성화 방안을 내놓았다. 이를 뜯어보면 대개가 주택경기를 일으켜 죽어가는 주택업체를 살리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분양가 자율화, 분양권 전매 허용, 신축주택 구입 때 세제.금융지원 확대, 임대사업 등록요건 완화 등 신규 주택시장 활성화를 꾀하는 것이 뼈대다.

특히 99년 초 주택업체를 위해 실시한 아파트 분양가 자율화 조치는 집값만 잔뜩 올려놓아 서민들의 내집마련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서울의 경우 외환위기 전보다 분양가가 평균 40%나 올랐으니 기존 집값이라고 가만히 있을 리 만무하다.

물론 경기부양 정책도 중요하다. 그러나 업체 챙기기에 정책의 무게가 실리다 보니 전세파동에 서민들만 고통받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중심부에서 변두리로, 큰 집에서 작은 집으로 '전세피난' 을 다니고 있다.

특히 올해는 비수기가 없을 정도다. 셋집의 절대물량이 모자란다면 어떤 약발도 먹히지 않고 단기 대책도 세울 수 없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아니다.

많은 집주인들이 전세를 월세로 바꾸기 때문에 전세는 모자라고 월세는 남아도는 수급 불균형이 심해지고 있다.

어찌 보면 저금리 시대에 자연스런 현상이다. 금리가 내리막길에 접어든 지 오래됐으니 지금쯤 전셋집이 모자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럼에도 정부는 "이사철만 지나면 괜찮다" 느니 "새 아파트 입주가 많아 곧 해소될 것" 이라는 매년 하던 소리만 되풀이하고 있다.

오장섭 건설교통부 장관은 지난 13일 주택업체 간담회에서 "올해 역점을 두는 주택정책은 주택경기 활성화 방안" 이라고 말했다.

업체에 쏟는 관심을 서민들에게 돌려 주택문제를 진지하게 풀어볼 때다.

황성근 조인스랜드 기자 hs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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