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권 파격적 '인사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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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의 인사구상이 가시화하고 있다.

장.차관 등의 고위공직자 임명까지 시스템에 따라 하겠다는 게 골자다. 구체적으론 인수위의 국민참여센터에서 추천을 받아 인사추천위의 검증을 거쳐 임명하겠다는 구상이다.

盧당선자가 장관 후보로 염두에 두고 있는 인물이 있다 해도 국민참여센터에 추천해야 한다. 인사추천위는 수십명 또는 수백명의 추천 후보들을 수명으로 압축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런 인사제도는 미국의 경우가 참고된 듯하다.

미국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에 대해선 누구나 온라인 또는 오프라인으로 응모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백악관 홈페이지에는 추천 절차도 소개하고 있다. 상.하원과 대통령비서실, 각종 사회단체 등에서 이력서나 추천편지를 받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3배수 정도로 후보를 압축하면 해당 후보들의 직장이나 관련 사회단체 등으로부터 기초자료를 수집한다. 이 때 해당 인물을 어떤 자리에 쓰려고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검토 대상 인물이 각종 출판물에 게재한 글들도 수집해 검토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후보가 압축되면 인사실장이 비서실장을 통해 대통령에게 한명을 추천한다. 대통령에게 보고되는 문서는 2쪽을 넘지 않게 추천이유 등이 적혀 있으며, 십중팔구는 대통령이 이를 수용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이 같은 방식을 적용할 경우 어떤 효과가 날지는 미지수다. 워낙 새로운 실험이기 때문이다.

일단 참여민주주의의 확대, 투명성 제고의 측면에선 긍정적이다.

몇몇 정권 실세(實勢)가 국정원 등 권력기관의 인사 파일에 의존해 지연.학연.계파 등을 따져 요직을 독식하기는 쉽지 않게 될 것이다.

盧당선자 핵심 측근은 "예컨대 경실련이나 참여연대 등 유력 시민단체가 추천한 인물과 특정 정치계파가 미는 인물이 올라오면 누구를 선택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같은 획기적 시도에는 盧당선자의 강한 의지가 반영돼 있다고 한다. 대통령직 인수위 김병준 간사는 盧당선자의 가장 큰 관심이 '인사'라고 전했다.

1993년 盧당선자의 '지방자치실무연구소'에 초빙강사로 갔다가 盧당선자와 인연을 맺은 金간사는 지난해 민주당의 국민경선 당시 盧당선자의 선거캠프였던 '자치경영연구원'의 이사장을 지낸 최측근이다. 누구보다 盧당선자의 뜻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인물로 꼽힌다. 또 다른 핵심 측근은 "새 정부의 성패가 인사에 달렸다"고 했다.

그러나 金간사조차 "워낙 새로운 실험이라 예상못한 부작용도 있을 것 같다"고 우려했다. 시민단체를 대상으로 청탁.로비가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 풍토상 盧당선자가 추천한 사람은 일종의 '가산점'을 안고 들어가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이렇게 되면 이 제도는 겉모습만 국민추천을 띨 뿐 사실상 대통령이 마음대로 임명하는 과거제도로 돌아간다.

국민참여의 폭이 확대되는 것은 좋으나 운용이 잘못되면 포퓰리즘(대중인기 영합주의)으로 흐를 수 있다는 경고음도 나온다.

강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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