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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후보, 청사진 없이 큰 정부 경쟁 …‘돈 먹는 공룡’ 될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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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제18대 대통령으로 누가 당선되더라도 다음 정부는 ‘큰 정부’가 될 전망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문재인 민주통합당, 안철수 무소속 세 후보 모두 각종 부처와 위원회 신설을 앞다퉈 발표하면서다.

 ‘창조경제론’를 내세운 박 후보는 “과학기술 분야를 책임지며 미래를 선도할 연구 지원을 담당할 부처”로 미래창조과학부 신설을 제시했다. 옛 과학기술부에 정보통신(IT) 분야의 일자리 창출 기능도 덧붙였다. 야권 후보들의 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과 흡사한 특별검사의 상설 기구화도 약속했다. 공약추진단에선 정보통신부·해양수산부 부활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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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후보는 ‘큰 정부’에 가장 적극적이다. 신설 또는 부활을 약속한 부처만 중소기업부·과학기술부·정보미디어부·해양수산부 등 4곳이다. 대통령 직속의 국가일자리위원회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도 공약했다. 문 후보는 지난달 27일 정강정책 방송연설에서 “사회복지를 전담하는 현장 공무원 수가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 비해 30분의 1 수준”이라며 사회공공 분야 공무원의 대규모 증원 방침도 밝혔다.

 안 후보 역시 “새로운 미래 산업을 구상·보완하는 혁신 부서”로 미래기획부 신설을 검토 중이다. 그가 평소 비판했던 ‘삼성 동물원’ 등 대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바꾸고 공정거래를 유도하기 위해 중소기업청의 확대·개편도 추진하겠다고 했다. 대통령 직속기구도 이미 3개나 약속했다. 일자리창출기구·재벌개혁위원회·교육개혁위원회가 그것이다. 분야별로 문제의 해법을 제시하기보다는 ‘집권 후 별도 기구 설립을 통한 대책 마련’이 안 후보 공약의 특징이다. 그러다 보니 조직 신설 공약이 잇따르고 있다. 앞으로 금융·복지·교육 등 분야별 공약 발표가 계속 예정돼 있으니 조직 신설 계획도 그만큼 많아질 전망이다.

 이외에 박 후보와 문 후보는 경찰 공무원과 관련해선 각각 2만 명, 3만 명의 증원도 약속했다. 최근 성폭력, 묻지마 범죄가 빈발하면서 치안에 대한 국민적 불안감이 커진 것을 감안한 공약이다.

 전문가들은 정부 조직의 팽창 자체를 무조건 비판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공무원 수를 늘리겠다는 후보들의 공약에도 근거가 있다. 행정안전부가 인구 1000명당 공무원 수를 국제 비교한 결과 한국은 27.8명으로 일본(34.9명), 독일(49.3명), 미국(72.2명), 프랑스(98.3명)에 비해 적은 편이다. 복지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공무원 수를 더 늘릴 여지가 있는 셈이다. 여기에 시장을 중시하고 ‘작은 정부’를 강조하는 신자유주의가 퇴색하는 국제 조류 역시 국내의 ‘큰 정부’에 힘을 싣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대선 후보들의 ‘큰 정부’론은 표밭을 의식한 경쟁의 성격이 짙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부 조직의 큰 그림을 제시하지 못한 채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담조직을 만들겠다는 식의 ‘쉬운 약속’을 남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다 보니 비대해진 정부 조직의 효율성과 책임성을 어떻게 확보하느냐에 대한 대안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성대 이창원(행정학) 교수는 “정부 조직은 향후 5년을 이끌 후보의 국정 철학을 구현할 도구인데 어느 누구도 차기 정부의 큰 패러다임은 밝히지 않은 채 그때그때 표밭을 의식한 신설만 얘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총론이 없으니 각론만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부처 신설과 공무원 팽창에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재정 계획을 내놓은 후보는 한 명도 없다. 정부의 덩치만 키워 국민 세금을 축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예컨대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달 현재 경찰 공무원 숫자는 10만2386명이며 1인당 예산을 연 3000만원으로 추산했다. 따라서 경찰 공무원 2만 명 증원엔 6000억원이 들고 3만 명 증원엔 9000억원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작지만 일 잘하는 정부’를 표방한 이명박 정부에서도 출범 초(2007년) 60만5000명(경찰·교직 포함)이던 국가공무원이 지난해 61만2000명으로 증가했다. ‘큰 정부’에선 그 증가폭이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이에 따라 학계에선 “공무원 수는 업무의 경중, 유무와 관계없이 일정 비율로 증가한다”는 ‘파킨슨의 법칙’을 근거로 공무원 자리가 자꾸 늘어나는 부작용을 우려하기도 한다. 성균관대 김근세(행정학) 교수는 “후보들이 선거를 앞두고 이익집단의 표를 얻으려고 부처 신설 공약에 유혹받기 쉽지만 이는 고위직 늘리기로 변질될 수 있다”며 “미국의 경우 지난 수십 년간 신설된 부처는 9·11 테러 이후인 2002년 만들어진 국토안보부 정도”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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