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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만 주면 적진도 간다 … 캠프 참모 ‘보따리 전성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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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8대 대통령 후보의 세 캠프에선 순혈주의가 깨진 지 오래다. 과거 서로 다른 정당에 속해 있던 인사들이 두루 뒤섞이며 각 캠프에 포진해있다. 일부에선 ‘용광로 인선’이라 하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선 ‘철새’ ‘변절자’라는 비난이 나온다. 자리와 역할을 주면 욕먹을 각오를 하고 적진(敵陣)에라도 옮겨 가겠다는 낭인(浪人)과 ‘보따리 장사’들의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전북 전주 출신으로 김대중 정부에서 경찰청장을 지낸 이무영 전 의원은 23일 새누리당 전북도당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는다. 그는 앞서 21일 기자회견을 하고 “박근혜 후보의 경찰 공약이 실현되도록 공증인이 되겠다”며 지지 선언을 한 뒤 새누리당에 합류했다. 그는 두 달 전까지만 해도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에 나선 김두관 전 경남지사의 공동선거대책본부장이었다. 이후 경선에서 패한 김 전 지사는 같은 당 문재인 후보의 대선 승리를 위해 힘을 합쳤지만, 이 전 의원은 방향을 틀어 새누리당으로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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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움직임의 시초는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다. 17대 민주당 의원이었던 그가 지난해 12월 박 후보가 이끄는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에 합류하자 ‘깜짝 영입’이란 평가가 나왔다. 한나라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장을 지낸 윤여준 전 의원이 문 후보 캠프에 국민통합위원장으로 합류한 것도 파격이었다.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김 위원장과 윤 전 의원은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원조’ 멘토로 이름을 알렸던 공통점도 있다.

 한광옥 전 새천년민주당 대표 등 범동교동계 30여 명은 박근혜 캠프로, 김성식 전 한나라당 의원과 이명박 대통령의 참모 출신인 이태규 전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은 안철수 캠프로 갔다. 민주당에 몸담았던 박선숙 전 의원과 송호창 의원도 안철수 캠프에 합류했다.

 이처럼 ‘정치 유목민(노매드)’들이 부쩍 증가한 원인으로 경제민주화 등 세 후보의 정책이 비슷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각 캠프의 경계선이 모호해져 소속을 옮기는 데 장벽이 낮아졌다는 뜻이다. 가상준(정치학) 단국대 교수는 “후보들 공약이 서로 비슷해 과거처럼 자기 색깔이 확 드러나지 않는 상황”이라며 “결국 누가 그 사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주느냐가 누가 어느 캠프에 있느냐를 좌우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세 후보가 박빙의 승부를 벌이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몸값을 더 쳐주는 곳’으로 사람들이 이동한 결과인 셈이다.

 이로 인한 부작용도 있다. 영입된 인사들끼리 엇박자를 내는 게 대표적이다. 대검 중수부장과 대법관을 지낸 새누리당의 안대희 정치쇄신특별위원장이 한광옥 전 대표의 국민통합위원장 임명을 반대해 당이 혼란에 빠졌던 게 그런 사례다.

 실무진끼리의 칸막이 현상도 문제다. 안철수 캠프의 한 인사는 “대부분 민주당 출신이 캠프 실무진을 구성하고 있는 상황이라 새누리당 출신은 상대적으로 교류가 적은 편”이라고 말했다. 신율(정치학) 명지대 교수는 “양당정치의 역사가 긴 미국에선 서로 상대 진영으로 옮기는 게 드물다”며 “각 후보와 정당이 지지층의 지지를 제대로 못 받고 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기게 된 것으로 바람직하게만 볼 일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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