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보고 올게요" 30대男 육아휴직 요청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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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자인 유상진씨가 17일 서울 문래동 집에서 두 살배기 딸 하민이와 공놀이를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기저귀가 많이 젖었네. 우리 기저귀 갈고 놀자.”

 16일 오후 서울 문래동의 한 아파트. 유상진(33)씨가 능숙한 솜씨로 외동딸 하민(2)양의 기저귀를 갈았다. 서울YMCA에서 청소년 교육을 담당하던 유씨는 7월부터 육아휴직을 하고 있다. 오전 8시 아내가 출근해 오후 7시 퇴근할 때까지 딸과 둘이 지낸다. 책을 읽어주고 놀이터에서 미끄럼틀도 태워준다. 아이가 잠들면 빨래·설거지를 한다. 유씨는 “회사 다닐 때보다 더 힘들 때도 있지만 아이를 보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휴직 결정은 쉽지 않았다. 6월에 회사에 육아휴직을 요청했다. 먼저 휴직했던 아내가 7월에 복직하면 딸을 맡길 곳이 없어서였다. 양가 부모는 지방에 있고 근처 어린이집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회사에선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남자 직원의 육아휴직 요청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간부회의에서 격론까지 오갔다. 고향의 어머니는 “휴직하지 말고 애를 내려보내라”고 했다. 그러나 유씨는 “딸이 24개월 될 때까지는 부모와의 정서적 교감이 중요하다는데 그 소중한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 회사에서 직원 복지를 확대하는 차원에서 8개월간의 휴직을 허락했다. 유씨는 “휴직기간에 한 달 수입이 180여만원에서 60만원으로 줄었지만 맞벌이하며 아이 돌봐줄 사람 쓰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말했다.

 직장을 휴직하고 가정에서 아이를 돌보는 아빠들이 늘고 있다.

 17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 들어 9월까지 기업체(공기업 포함)에서 남성 근로자 1351명이 새로 육아휴직을 했다. 한 달 평균 150명꼴이다. 부부가 각각 육아휴직을 쓸 수 있게 된 지 10년 만인 지난해 처음 1000명을 넘어선 이후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 휴직 기간도 평균 10개월 정도로 짧지 않다. 법정기한은 1년이다. 공무원과 교사를 포함하면 남성 육아휴직자 규모는 더 커진다. 지난해만 해도 남성 공무원 623명, 교사 241명이 육아휴직을 썼다. 각각 전년보다 165명과 98명이 늘었다. 올해도 같은 규모로 늘면 전체 남성 육아휴직자는 3000명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이화여대 사회학과 이주희 교수는 “여성 취업이 늘면서 부부가 육아부담을 나눠 지려는 인식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휴직급여가 정액제(50만원)에서 정률제(통상임금의 40%, 최대 100만원)로 바뀐 것도 증가세에 한몫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일반기업체의 남성육아휴직이 활성화되기에는 여전히 걸림돌이 많다. 기업체의 남성육아휴직자는 근로자 100명 중 3명(2.8%) 정도에 불과하다. 코레일(31명) 같은 공기업이나 대기업(648명)이 상대적으로 활성화된 편이다. 근로자 10인 미만 영세업체에서 육아휴직을 한 남성은 257명이다.

 일반 기업의 남성 육아휴직률이 낮은 것은 기업들의 부정적인 인식 때문이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실시한 설문에서도 기업 10곳 중 7곳(72%)이 ‘육아휴직이 부담스럽다’고 답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직장인들에게 육아휴직이 ‘그림의 떡’인 사례가 많다. 다섯 살짜리 딸이 있는 중견기업 연구원 최모(35)씨는 휴직을 고민하다 최근 포기했다. 그는 “남자 직원 중 아직 휴직한 사람이 없는데 나만 나섰다가 혹여 불이익이라도 받을까 걱정됐다”고 말했다. 낮은 휴직급여도 문제다. 휴직 전의 생활수준을 유지하려면 추가 자금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신기창 고용부 고용평등정책관은 “재원상 당장 육아휴직 급여를 올리기는 힘들다”며 “기업들의 부정적 인식을 바꾸기 위한 홍보활동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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