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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뒤 폐허된 2층집 그의 설치미술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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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2012 광주비엔날레 출품작 앞에 선 아브라암 크루스비예가스. 폐가와 거기 남아 있던 쓰다만 칫솔·빗자루 따위를 이용했다. 어디까지를 작품으로 봐야 할지 난감한 개념미술이다. 그는 “폐가도 역사의 중요한 한 부분이고, 나 역시 집이 가진 겹겹의 층(層) 중 하나며, 이 도시의 일부다”라고 말했다. [사진 광주비엔날레]

아버지는 수도사였다. 아버지는 싱글맘의 아들로,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자랐다. 수도원을 나와 멕시코시티로 이주했다. 거기서 이민자의 딸인 어머니를 만났다. 외갓집 사람들은 부잣집 살림을 도우며 생계를 꾸렸다.

 멕시코 미술가 아브라암 크루스비예가스(44) 얘기다. 아버지는 꽃과 새를 그리거나 성인(聖人)들을 목각해 팔았다.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란 소년은 멕시코 국립대에서 철학·교육학을 전공했고 멕시코 출신의 세계적 미술가 가브리엘 오로스코(50)의 작업실서 수학했다.

그리고 자국의 사회·경제적 특성을 반영하는 영상과 설치작업으로 이름을 알리며 멕시코 개념미술의 새 바람을 주도했다.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 2011년 이스탄불 비엔날레에 참여했다.

 11일 만난 그는 “제3세계 어디나 그렇겠지만 도시화 바람으로 많은 이들이 고향집을 버리고 멕시코시티의 빈민가에서 스스로 집을 짓고 그걸 고쳐 나가며 산다”고 말했다. 그의 유년기가 그랬다.

“친척이나 이웃과 함께 집을 조금씩 손보며 지냈다. 공간과 시간을 주변과 공유하며 삶의 기쁨, 노동의 소중함을 알아가는 과정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전시현장에서 나온 재료로 설치 작업을 한다. 자칭 ‘자동건축’이다. “그때그때 형편에 맞게 집을 지은 멕시코 빈민들의 독특한 삶에서 나온 용어다. 사람의 정체성 또한 즉흥적으로 만들어지며 끊임없이 변하지 않느냐”는 설명이다.

 이 ‘현지의 재료’란 게 다소 광범위하다. 그는 지난해 영국 옥스포드 미술관 개인전에서는 근처 목초지에 굴러다니는 쇠똥·말똥을 이겨 사람 머리 모양으로 만든 조형물을 내놓기도 했다. 제목은 ‘동시에 이루어진 약속의 낙관적 실패’다.

 그는 “미술관 근처 인류학 박물관에 갔다가 영국이 식민 통치를 하던 시절 가져온 전리품이 전시된 것을 봤다. 브라질서 가져온 사람 머리도 있었는데 오래돼 쪼그라들어 있었다”며 “현대 멕시코에서의 현대화의 실패를 말하고 싶었다. 현대화의 약속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배설물로도 작업을 하고 전시할 수 있다는 긍정을 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크루스비예가스는 2012 광주비엔날레(9월 7일~11월 11일)에 참여했다. 충장로 광주극장 뒤편 사택 전체를 재료로 삼은 ‘자동건축 작업실: 비효율적인 땜질 워크숍: 극장 뒤 무료상담’이라는 긴 제목의 작품을 내놓았다. 쟁쟁한 미술가들과 주전시장에서 벌일 ‘미술 스펙터클’을 거부하고 폐허가 된 이곳을 택했다.

 1940년대 지어진 이 2층 건물은 1970년 전후 한국 영화의 전성기 때 영화인들의 게스트하우스로 사용됐고, 이후엔 일반 가정집, 귀금속 공방 등으로 쓰였다.

그는 여기서 3주간 머물며 일주일에 두 번씩 사람들을 만나 정치·경제·예술 등 여러 분야에 걸쳐 토론했다.

 “1당 독재체제의 멕시코에서는 이미 1968년 민주화 운동이 있었다. 44년이 지났지만 변한 게 없다. 그래서 한국의 경우가 궁금했다. 멕시코는 안됐는데 한국은 어떻게 경제성장·자본주의에 성공했는가. 그래서 광주에서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내가 미술을 하는 이유는 배우고, 그걸 나누기 위해서다”라며. 그는 이 작품으로 광주비엔날레에서 ‘눈예술상 영예상’을 수상했다.

12일 재단법인 양현(이사장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에서 수여하는 양현미술상도 받았다. "상금(1억원)보다 더 기쁜 것은 예술적 인정이다. 상금은 다음 달 태어날 첫 딸을 위해서도 쓰겠다”고 했다.

◆아브라암 크루스비예가스(Abraham Cruzvillegas)=멕시코 출신의 조각가. 1968년 멕시코시티에서 태어나 멕시코 국립대학에서 철학·교육학을 전공했다. 동 대학에서 미술사 및 예술이론 교수를 역임했다. 라틴 아메리카의 지역성을 드러내는 설치 작업으로 이름났다. 런던 테이트 모던, 뉴욕 뉴뮤지엄에서 작품이 소개됐으며, 올해 카셀 도쿠멘타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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