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우]한반도의 평화와 협력을 위하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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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이 밝았다. 돌이켜보면 2000년 6월 이후 2002년까지 2년 반 동안 한반도는 강대국이 좌지우지하는 국제정치의 수동적 대상으로부터 국제정치를 변화시킬 수 있는 능동적 주체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한국을 중심으로 보면, 6.15 공동선언. 남북간의 철도, 도로 연결 등 각종 협력의 진전, 신효순, 심미선 양의 미군장갑차 압사 사건을 계기로 분출되고 있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반미반전평화운동, 그리고 대통령선거에서의 노무현 후보의 당선 등, 이러한 변화는 어느 순간 갑자기 온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수십년간 쌓인 힘이 세대를 넘어 폭발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2003년도 한민족의 능동적 힘이 더욱 강성해지기를 기원한다.

새아침에 북한은 매년 연례의 신년공동사설을 발표하였다. <위대한 선군(先軍)기치따라 공화국의 존엄과 위력을 높이 떨치자>는 제목의 공동사설에서, 북한은 반제자주사상으로서의 <선군사상>을 제일의 혁명이념으로 내세우고 <우리민족끼리>의 이념으로 남북간 민족공조를 제기하였다. 한반도의 대결구도가 남과 북의 한민족 대 미국이라고 설정한 것도 흥미롭다. 그런데 그 선군사상의 정치를 "전 민족적 범위에서 자주권을 고수하기 위한 민족중시의 정치이며 민족공동의 반영을 위한 애국애족의 정치이다"라고 규정한 데 대해서는 후술하지만 재고의 여지가 있다고 하겠다.

경제부문에서 전력, 석탄, 금속, 철도운수 등 기존의 선행공업부문을 강조하고 경공업과 농업의 발전, 실리를 위주로 한 경제관리 개선, 첨단과학기술의 도입 등을 제시한 점은 최근 2년간 북한이 보여준 경제관리 개선정책의 내용을 다시 반복한 것이지만, 국방공업에 우선적인 배려를 하겠다고 명언한 점은 <고난의 행군>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게 한다.

북한의 노동신문(2000년 10월3일)에 따르면, 1995년 1월 1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인민군 제214부대 다박솔 초소를 방문하면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고 공장들이 숨이 죽고 나라에 커다란 경제적 난관이 휩쓰는 때에 농촌에 앞서 병사들을 찾아간 것이 <선군사상>의 시작이라고 하였다. 김정일 위원장은 "우리나라의 경제형편이 어렵다는 것을 몰라서 인민군대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그 어떤 피값을 치르더라도 조국을 지키고 봐야 한다. 나라를 지켜 내기만 하면 생활을 푸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망국노가 되겠는가, 자주적 인민이 되겠는가, 오늘 문제는 바로 이렇게 선다."라고 선언하며 선군정치를 내세웠다고 한다. 북한을 이를 선군시대의 도래라고 규정지으며 군대를 앞세워 혁명과 건설의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는 독특한 정치방식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 선군정치가 2003년의 신년공동사설에서는 전 민족적 범위, 즉 남한을 포함하는 민족의 번영을 위한 정치라고 확대 규정되고 있다. 남과 북의 한민족 대 미국이라는 대결구도를 이끄는 정치사상이 북한의 선군정치사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민족공조의 주도성이 북한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는 셈이다.

남한에서 미국의 전쟁책동을 반대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북한의 이러한 입장을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반도에서의 민족공조는 체제와 신념, 종교를 초월하여 대등한 입장에서 남북한의 공존, 공영, 공리를 도모하는 것이다. 선군정치가 전 민족적 범위에서의 민족중시의 정치라고 해석하는 것은 북한정부의 자유이겠지만, 남한에서는 남한대로의 민족공조의 입장을 가지고 북한을 대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이 북한에 대한 압박정책이 전쟁으로 비화될 수도 있는 위기에서 북한이 "동족이 동족을 반대하여 정세를 긴장시키고 평화를 파괴할 그 어떤 이유와 조건도 없다"고 하는 말만 믿고 있을 수는 없다. 북한이 진정으로 미국에 반대하는 민족공조를 추진하려면 남북한간에 정치적 군사적 신뢰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즉, 북한은 남한에 먼저 신뢰를 주어야 만이 민족공조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미국의 부시정권 등장이후 2년간 남북관계를 되돌아보면, 북한은 남한이 미국과 공조한다는 핑계로 남북간의 신뢰양성조치를 지속하는데 무심하였다. 합의된 남북간 교통망 연결, 개성공단 건설 등도 북미간, 북일간의 관계가 악화된 2002년 10월 이후에 급진전되었다. 북한은 남북간의 협력을 미국이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하기 이전에, 미국이 가로막을 수 없을 만큼 강력한 민족공조를 추구했어야 했다. 북한이 남한에 대해서는 경제적 분야에서의 협력과 통일운동의 양성을 우선하고 정치적 군사적 안보관련 분야는 미국과 해결한다는 이분법적 접근법을 지금도 구사하고 있다면, 진정한 의미의 반미 남북공조는 불가능할 것이다. 남한을 필요에 따라 이용하는 정책으로는 남한의 민심을 잡을 수도 남한정부와의 협력을 기대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한편 남한 정부는 한미군사동맹이라는 틀에 매여 있기 때문에 미국의 대북정책을 정면으로 부정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대통령은 미국이 추구하는 대북 봉쇄정책을 비판하고 햇볕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할 것을 밝히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노무현 대통령당선자는 대북정책의 5원칙으로서, ①신뢰우선주의, ②국민과 함께 하는 정책, ③장기적 투자로서의 대북경협, ④군사와 경제를 함께 하는 포괄적 안보, ⑤당사자 주도에 입각한 국제협력 등을 밝힌바 있다.(2002.10.25 '평화포럼' 연설) 북한은 이 다섯 가지가 의미하는 바를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즉, 한반도문제의 당사자 주도를 추구한다는 면에서 남북간의 평화공존과 통일을 지향하지만, 당면하게는 국가의 안보를 전제로 하며, 전쟁을 반대하고 경제협력을 장기적인 안목으로 추구하는데 남북간의 신뢰가 우선한다는 입장이다. 북한이 이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남한에 대해 민족성원 전체가 공감할 수 있는 정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한반도에 전쟁위기가 현실화되기 전에 남북한 한민족의 능동적 힘으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북한과 남한의 보다 적극적인 상호신뢰와 공조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필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항을 제기하고자 한다.

1) 북한정부에 대한 제기
①핵개발을 위한 조치를 원자력발전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국제사회의 우려를 벗어날 수 없다. 한반도 비핵화의 원칙을 고수하기 바란다. 핵이 가진 양면성(원자력발전과 핵무기)을 모호하게 유지하는 것으로서 외교적 카드를 쥘 수는 있겠지만, 북한의 핵개발은 일본의 핵무장과 중국의 핵무기 추가개발을 허용하게 되어 한반도는 핵전쟁의 위험이 그만큼 높아진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으려면, 반전비핵평화운동의 입장에 서야 하며 유럽, 러시아, 중국 등 미국을 견제할 수 있는 국가들은 이 점이 분명해야만 북한을 지원할 수 있다. 체제안보를 위한 핵무기 선택을 남한으로서는 용인할 수 없음을 인식해야 하며, 북한이 추구하는 반미 남북공조도 이 점이 분명해져야만 가능하다.
②한편, 미국의 대북 압력은 전쟁책동일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에 유엔 등에 대하여 미국의 '방어적 선제공격(Preemptive attack)' 부당성을 제기하고, 중국과 러시아. 유럽의 지원을 얻기 위한 외교적 활동을 전개한다.
③핵개발이 핵무기개발이 아닌 원자력발전이라는 점에 대한 투명성을 제시하기 위해, 남북한 주도에 의한 '남북한 동시 핵사찰' 실시를 고려한다.
④남북한 경제협력에 대해서는 어떠한 곤란한 상황이 있더라도 상호신뢰를 위해 지속적이고 일관된 지원을 실시한다. 선군정치를 하면서 대외경제협력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남북간의 경제협력에 군대를 앞세우는 일은 경제협력을 하지 말자는 것과 다름없다. 남북간의 신뢰양성을 위해서는 남한에 대해서 선군정치를 앞세우지 말아야 한다.
⑤한반도에 닥치는 전쟁위험을 민족내부의 공조로 해결하기 위해 김정일 위원장이 2003년 3월에 서울을 방문하여 노무현대통령과 더불어, '전쟁반대, 비핵선언, 동시사찰, 군사적 신뢰, 경제협력 등을 위한 남북한 정부간 협정'을 체결한다. 노무현 대통령으로 하여금 이 결과를 가지고 미국을 방문하여 부시정부에 대하여 대북봉쇄정책의 포기를 설득하도록 한다.

2) 남한정부에 대한 제기
①북한의 핵무기개발에 대해서는 반대하지만, 미국의 전쟁책동에 대해서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다.
②대통령이 갖고 있는 국군통수권을 전면적으로 회복하고, 주한미군의 지위협정을 개정하기 위한 방안을 먼저 마련한다. 비무장지대의 관할권을 유엔군에서 한국군으로 넘겨받기 위한 절차를 검토한다. 이를 위해서는 휴전협정을 남북간의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문제를 검토한다.
③북한과의 경제협력 등은 어떠한 곤란한 상황이 있더라도 상호신뢰를 위해 지속적이고 일관된 지원을 실시한다.
④노무현 대통령은 취임후 미국방문보다 남북간 정상회담을 먼저 실시한다.
⑤한반도를 포함하는 동북아시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남북이 중심이 되고 중, 러, 일, 미 4개국이 지원하는 한반도평화와 동북아협력을 위한 다국간 협의틀을 촉진한다.
일본 동북아시아경제연구소 객원연구원 이찬우
2003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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