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진의 시시각각

문재인, 2007년 어떻게 지울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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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한국 정치사에서 대통령들은 임기 말에 여당 세력으로부터 가혹한 공격을 당하곤 했다. 가장 처절하게 몰린 이는 김영삼(YS)과 노무현이다. YS는 화형식까지 당했다. 노무현도 이 못지않았다. 열린우리당 세력 대부분이 그를 떠났다. 수십 명씩 무리를 지어, 먼 사람부터 가까운 이까지, 모두 야멸차게 떠났다. 정치사에 남을 집단 탈주였다. 모든 건 2007년에 벌어졌다.

 가장 먼저 떠난 이 중에 천정배가 있었다. 그것은 충격이었다. 5년 전 노무현이 미미했을 때 그가 맨 처음 지지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떠나면서 그는 “열린우리당 틀로는 희망이 없다”고 했다. 2월엔 23명이 탈당했는데 선두는 김한길이었다. 그는 “열린우리당 틀에 갇힌 채로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소용없다”고 말했다.

 ‘노무현은 실패했다’는 건 당시에 일종의 진리였다. 핵심 친노(親盧)만 빼고는 모두가 노 대통령의 실패를 비난했다. 진보 이론가 최장집 교수는 “노무현 정부는 ‘민주 정부’로서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열린우리당 마지막 의장 정세균은 “우리 당이 실패한 이유는 리더십 부재이며 국민과의 소통에도 부족함이 있었다”고 말했다.

 노무현이 최고로 중용했던 3인도 같은 목소리였다. 열린우리당 창당 주역 정동영은 이렇게 말했다. “오늘의 참담한 민심이반은 국민의 삶을 구체적으로 개선시키지 못한 뼈아픈 업보다.” 국무총리를 지낸 한명숙은 이렇게 말했다. “참여정부는 정책추진 과정에서 합의를 이루는 데 미흡했고 국민과의 소통도 다소 막혀 있었다.” 역시 국무총리를 지낸 이해찬은 당 해체에 합류하면서 “비통한 심정이고 죄송한 마음”이라고 했다.

 허공에 흩어지는 열린우리당을 보면서 노 대통령과 측근들은 충격과 배신감에 휩싸였다. 이강철 정무특보는 “탈당파 속내는 결국 대선 장사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10년 집권하면 많이 한 거다. 야당 하면 어떠냐. 박근혜·이명박씨가 대통령이 된다고 나라가 망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그해 6월 원광대에서 연설했다. “노무현 때문에 망했으니 나가겠다 이거다. 그러나 탈당하는 사람들 인기는 나보다 더 낮다. 회사가 아직 부도도 나기 전에 여유 자금이 좀 바닥났다고 보따리를 싸 가지고 우수수 나가 버렸다. 정치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국회에 왕창 들어와 가지고···.”

 연설을 보면 대통령은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하고 격정에 사로잡혔던 것 같다.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 심리적 불안이 임기 말까지 지속됐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불안정 속에서 노 대통령은 자구적(自救的) 업적에 매달리는 심정으로 10월에 평양에 갔을 것이다. 심리 상태가 그러했으니 김정일에게 NLL(북방한계선)에 관해서 느슨한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정상회담 대화록을 보면 대통령의 심리상태가 읽힐 것이다.

 세월이 5년이나 흘렀다. 지금 이해찬은 민주당 대표, 김한길은 서열 2위 최고위원이다. 정동영은 문재인 후보 ‘남북경제연합위원회’ 위원장이다. 노무현의 표현대로라면 ‘회사가 아직 부도나기 전에 보따리 싸서 나갔던 사람들’이 부도난 회사의 부사장(문재인)을 내세워 투자자를 다시 모으고 있다. “이번에는 잘할 수 있다”며 새로운 팸플릿을 나눠주고 있다.

 한국의 대통령 선거는 종종 망각증과의 싸움이 되는 것 같다. 1987년 유권자들은 양김(兩金) 분열 속에서 ‘보통사람 노태우’에 가려서 12·12 반란과 광주를 잊었다. 그래서 그들은 민정당 정권을 다시 만들어 주었다. 2012년 12월, 유권자가 2007년을 잊으면 문재인과 민주당은 유력한 집권세력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과연 문재인은 부도(不渡)의 추억을 지우고 새로운 투자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인가. 가을바람이 부는 봉하마을 땅속에서 노무현은 자신과 함께 부도를 냈던 회사의 부사장에게 무슨 조언을 해주고 있을까. 문재인은 어떤 새로운 경영기법을 유권자에게 내놓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