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월드컵 성공을 가꾸는 사람들(13)

중앙일보

입력

"서울 월드컵경기장의 규격은 가로 105m, 세로 68m, 관중석 의자 수는 6만4천677개, 화장실 수는 377개, 조명판 수는 264개입니다."

하루 1천여명의 외국인 관광객들이 찾는 2002월드컵 홍보의 최전방 서울 상암동월드컵경기장 홍보관에서 고희의 나이를 잊은 채 유창한 일본어로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경기장 구석구석을 소개하는 노인이 있다.

홍보관 외국인 안내 봉사팀의 수.토요일 팀장을 맡고 있는 박무용(71)씨. 95년 서울 안천초등학교 교장직을 끝으로 42년간의 교직 생활을 마친 박씨가 상암경기장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지난해 10월. 3년째 계속해 오고 있는 서울 한옥마을 외국인 안내 봉사를 주선했던 새서울자원봉사센터를 통해서다.

처음 홍보관에 왔을 때 특유의 `교장선생님 스타일'로 홍보관 관계자들을 적잖이 당황시켰던 그는 3-4개월 동안의 교육을 마친 이제 넉넉한 미소와 때로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유능한 월드컵 홍보 도우미로 거듭났다.

특히 그의 열성적인 활동은 홍보관 뿐만 아니라 경기장 건설 현장 관계자들에게까지 소문이 자자하다.

박씨는 15-30명의 일본 관광객들을 이끌고 영상관-종합전시실-스타디움으로 이어지는 1시간 가량의 안내 코스를 돌며 쉴 새 없이 설명해야 하는 어려운 작업을 하루 5-6 차례나 거뜬히 해내며 30-40대 젊은 봉사자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이같은 열성에 홍보관측은 봉사 시간 제한 방침을 바꿔 그에게 추가 활동을 요청했고 그도 이 제안을 받아들여 현재 그는 다른 봉사자들보다 4배나 많은 16시간을봉사 활동에 쏟고 있다.

뿐만아니라 사소한 일정 차질을 `국가차별'로 오해해 항의하거나 갑작스럽게 의전을 요구하는 등 돌출적인 사건이 발생할 때 마다 `해결사'를 자처하는 그는 이제홍보관 식구들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잡았다.

60년대 재직중이던 학교에서 잠시 학생들을 지도했던 것이 축구 경력의 전부인그는 한국에서 열리는 역사적인 월드컵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은 심정으로 자원봉사 신청을 해 놓기는 했지만 나이가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봉사활동이 있는 날이면 학교에 출근하는 기분으로 경기장에 온다는 박씨는 "내 스스로 외교관이 된 것 같아 힘든 줄도 모르고 일하고 있다. 내년 월드컵 무대에서도 꼭 한 번 활동해 보고 싶다"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서울 월드컵경기장 홍보관의 윤광용 관장은 "노인들 대부분이 자신의 전직에 맞는 대접을 받으려 하지만 박 선생님은 봉사를 위해 생활습관을 바꿨을 뿐 아니라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열성적이다"며 이제 홍보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상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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