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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제국 미탈로 넘어간 에스카다 … 이젠 명품제국 꿈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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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브루노 샐저 에스카다 최고경영자가 최근 서울 청담동에 문을 연 에스카다 ‘플래그십’ 매장 문을 나서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독일·패션·인도.

 언뜻 보기에 어울리지 않는 듯한 세 개의 요소를 융화시킨 브랜드가 있다. ‘에스카다(ESCADA)’다. 세계 패션 업계에선 ‘독일을 대표하는 명품 브랜드’로 불린다. 역사는 40년 남짓,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80~90년대엔 잘나갔다. 그러다 2008년 부도를 맞았다. 인도 최고 부자로 꼽히는 락슈미 미탈(미탈그룹)이 인수했다. 2007년부터 지금까지 에스카다 그룹 최고경영자(CEO)로 일하고 있는 브루노 샐저(55)를 만났다. 최근 서울 청담동에 문을 연 브랜드 플래그십 매장 개장 행사에서다. 플래그십(flagship)은 ‘모함(母艦)’이란 뜻으로, 한 브랜드의 대표격인 단독 대형매장을 일컫는다. 샐저가 이끄는 에스카다는 지난해 매출 5억 유로(약 7250억원)를 달성했다. 명품 업계가 전 세계적인 경기 불황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눈에 띄는 성과다. 올해 매출도 전년 대비 7~8%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그에게 ‘명품 브랜드 부활’ 스토리를 들었다.

 “에스카다가 가장 잘하는 것을 더 잘하는 것, CEO로서 해야 할 일은 그뿐이었다.”

 한 시간 남짓한 인터뷰에 응하면서 그는 “우리가 잘하는 것, 기술적으로 완벽하면서도 아름다운 의상을 어떻게 하면 고객에게 더 잘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만 고민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가방 등 잡화 분야보다 의류에 더 집중할 것”이라고도 했다. 요즘 패션 산업의 트렌드와는 한참 동떨어진 얘기다. 최근 많은 명품 브랜드가 관리가 까다롭고 경영상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은 의류보다는 가방 등 잡화 분야에 집중하고 있어서다. 의류의 경우 같은 디자인이라도 치수별로 여러 벌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재고 부담이 크다. 원단 선택이나 부자재를 고르는 데도 가방에 비해 손이 많이 가고 작업 과정이 까다로운 편이다.

 반면 가방·지갑 등 잡화 분야는 고객의 치수와 관계 없이 팔리는 디자인 하나만 만들면 돼 상대적으로 재고 부담도 작다. 게다가 ‘잇 백’이라 불리는 히트 상품 하나면 매출도 크게 늘릴 수 있다. 샐저는 “지난해 매출의 90% 이상이 의류 분야고 앞으로도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위기를 타개하는 전략은 좌고우면하는 게 아니라 핵심적인 역량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데 있다”는 게 샐저의 주장이다.

 에스카다 의류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그에게 물었다. “고객들, 특히 명품을 선호하는 한국 소비자는 독일과 ‘명품 패션’을 바로 연계해서 생각하는 것 같지 않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산(産) 명품을 선호하는 편인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그는 바로 인정했다. “물론 ‘메이드 인 프랑스’ ‘메이드 인 이탈리아’와 독일 제품의 이미지는 많이 다르다.” 그러고는 덧붙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과한 게 있다. 사람들이 독일의 자동차와 기계, 주방 기구 등을 볼 때 받는 인상이 있다. 정교하다. 품질이 좋다. 신뢰할 수 있다. 뭐, 이런 것들이다. 이런 것들이 우리 브랜드의 이미지에도 녹아 있다.”

청담동 에스카다 매장 개장 행사에 참석한 배우 김희선(왼쪽)과 메가 미탈 에스카다 그룹 회장.

그는 설명을 이어갔다. “여전히 영화제 레드 카펫에서 여배우들이 입는 드레스는 에스카다 제품이 많이 눈에 띈다. 패션에서 기술적인 우수성이 무슨 소용이냐고 묻는다면 앞선 말이 답이 될 것이고, 고객의 취향에 맞는 멋진 것을 우리가 만들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레드 카펫이 또 다른 해답이 될 것이다.” 그의 말처럼 대중에게 가장 익숙한 에스카다 패션은 레드 카펫 드레스다. 스웨덴 왕위 계승 1순위인 빅토리아 공주, 할리우드 여배우 케이티 홈스, 캐서린 헤이글, 앤 해서웨이 등 유명인들이 에스카다 드레스의 주 고객이다.

 에스카다 그룹 CEO가 된 지 1년이 채 안 됐을 때 에스카다는 부도를 맞았다. 회사 주인이 바뀌었지만 그는 이후에도 CEO로 경영 전반을 책임지고 있다. 명품 브랜드의 ‘심폐소생술’이 따로 있었을까. “2000년대 에스카다는 고객의 취향과 동떨어져 있었다. 고객들이 매일 이브닝 드레스만 입지 않는데도 에스카다 매장에 가면 일상복은 매우 적었고 눈에 띄는 것도 없었다. 하지만 에스카다는 여성복 전반에 걸쳐 우아하고 매력적인 옷을 만든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브닝 드레스만은 아니었다.”

 샐저는 CEO가 된 이후 직원들에게 한결같은 주문을 했다고 한다. ‘지금 사서 지금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어라’. 그래야 고객과 접점을 늘 유지할 수 있고 회사도 긴장을 놓지 않을 수 있다는 이유였다. “패션 브랜드라면 응당 그래야 하는 것인데 그것을 소홀히 했던 거다.” 부도 직전 이러한 계획을 수립한 그는 새 주인을 맞은 뒤에도 이 전략을 밀어붙였다. 메가 미탈 에스카다 그룹 회장도 그의 전략을 전폭 지지했다. 에스카다는 평균 가격을 20% 낮추는 동시에 일상복 디자인을 강화하는 전략으로 잃어버린 고객층을 다시 끌어모았다. CEO 샐저의 존재 자체가 에스카다 경영에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가 세계 명품 업계의 스타 CEO이기 때문이다. 샐저는 에스카다 합류 전 또 다른 독일 브랜드 ‘휴고 보스(HUGO BOSS)’에서 12년간 경영진으로 일했다. 2007년 CEO직을 마지막으로 그가 휴고 보스를 떠난다는 게 알려진 직후 독일 증시에 상장돼 있는 휴고 보스의 주가가 하루 만에 9.2% 하락했다고 한다.

 그는 “미탈 그룹에 인수됐다고 해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면서도 “다만 자금력이 막강한 가문이 버티고 있는 만큼 에스카다를 전초 기지로 삼아 다른 명품 그룹처럼 키워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루이뷔통(LVMH)그룹이나 구찌 등을 소유한 페페에르(PPR)처럼 명품 그룹으로 도약할 수도 있을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샐저는 “당장은 에스카다 자체의 위상을 더욱 공고하게 하는 것이 최대의 과제”라며 말을 아꼈다.

 세계적인 경기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명품 업계도 타격을 입고 있는 요즘 스타 CEO의 해법은 간단명료했다. “불황은 언제나 있었다. 10여 년 명품 업계 CEO로 있으면서 불황이란 단어에 익숙해졌다. 문제는 이런 와중에도 누군가는 잃고 누군가는 얻는다는 사실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내가, 우리 브랜드가 얻는 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이 전제 하에서 사업 전략을 구상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 시장에선 해외 명품 업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 게 사실이다. "해외 명품 업체가 한국 고객을 만만하게 여기고 있다”거나 "시장에서 이익만 취할 뿐 사회공헌엔 인색하다”는 등의 시각이다. 이에 대해 그는 “아직까지 에스카다 코리아가 그런 비난을 받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한국을 대표하는 전기·전자 업계와 마찬가지로 명품 업계도 이익을 생산기지에 재투자하고 장인을 교육·훈련시키는 데 지속적으로 자금을 투입해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ESCADA 1976년 독일 뮌헨에서 패션 디자이너 마가레타 라이가 그의 남편 볼프강과 만든 의류 브랜드다. 스웨덴 스톡홀름 출신의 라이는 젊은 시절 패션 모델로 일하다 디자이너가 됐다. 독일 감성을 담은 절제된 디자인에 강렬한 색상이 특징인 여성복으로 독일의 대표적인 패션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92년 창립자인 라이 여사 타계 후 경영상 어려움을 겪다가 2008년 부도를 맞았다. 2009년 세계 1위 철강회사를 소유한 인도의 미탈 그룹에 인수됐다. 지난해 포브스가 발표한 전 세계 부호 순위 6위에 올라 있는 미탈 그룹의 락슈미 미탈 회장은 에스카다 그룹 경영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는다. 대신 그의 며느리인 메가 미탈(36)이 에스카다 그룹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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