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 달라진 한국 영화 제작 방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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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의 제작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편집.녹음.색보정 등 후반 작업에 땀을 기울이고 있다. 촬영 후 1~2개월만에 서둘러 마감했던 후반 작업을 6개월 이상으로 늘려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2일 오후 서울 신사동의 모팩 스튜디오 작업실. 직원 20여명이 컴퓨터와 씨름하고 있다. 11월 말 개봉할 '화산고' (김태균 감독) 의 디지털 색보정 작업이 한창이다.

'화산고' 는 가상의 고등학교를 무대로 한 무협 액션물. 고교 최강의 1인자가 되려는 학생들의 에피소드를 만화.SF.무협지 형식을 뒤섞은 오락영화다.

가장 큰 특징은 작품 전체의 색조를 컴퓨터로 조절한다는 점. 카메라로 찍은 원필름을 컴퓨터로 입력하고, 장면 하나하나(예컨대 인물.소품.배경 등) 의 색상을 맞춘 후 컴퓨터로 필름을 재출력한다.

촬영 분량의 40%에서 와이어 액션(배우의 몸에 철사를 매달아 공중 이중 발차기, 돌려차기, 벽타고 뛰어다니기 등을 재현) 을 사용했기에 전체 작품을 컴퓨터로 마무리하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일례로 배우들의 몸에 감긴 철사를 지우는 데만 아르바이트생을 포함해 하루 평균 50여명이 매달렸다. 초당 24프레임이 찍히는 원필름의 한컷 한컷에 나타난 철사를 일일이 삭제했다. "말이 디지털이지 실제론 엄청난 '노가다' 다" 라고 모팩의 장성호 실장은 말했다.

'화산고' 의 디지털화는 지난해 9월 시작됐다. 8월 말 촬영에 착수한 이후 그때 그때 필름을 넘겨받아 후반 작업을 거의 동시에 진행했다.

"최근 개봉한 '미이라2' 는 CG 등 특수효과에 4천만달러를 투자했습니다. 할리우드의 웬만한 대작엔 CG 전문가만 5백~6백명 정도 동원됩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아직 얘기도 꺼낼 수 없죠. " 장실장의 지적이다.

'화산고' 는 음향 작업에 국내 최초로 6.1 서라운드 음향을 도입할 예정. 기존 5.1채널(중앙.전면 좌.우.측면 좌.우) 외에 후면에도 별도의 음향을 내보내는 스피커를 설치, 보다 입체적인 소리를 구현한다는 것이다.

소리만 놓고 보면 '무사' (김성수 감독.9월 개봉 예정) 를 빼놓을 수 없다. 정초부터 6월 말까지 호주 스튜디오에서 작업했다.

조민환 프로듀서는 "화살 날아가는 소리, 칼 부딪히는 소리, 말 달리는 소리, 칼이 갑옷을 뚫고 지나가는 소리 등을 빠짐 없이 되살렸다" 고 설명했다.

'무사' 제작진은 영화에 들어간 각종 소품을 호주까지 공수, 장면 장면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음향을 만들렸고 했다. 결과적으로 촬영 기간 6개월보다 긴 시간이 편집.녹음 등 후반 작업에 소요됐다.

한국 영화계가 후반 작업에 공을 기울이는 이유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눈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외국영화에 버금가는 수준을 갖추지 못하면 결국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 영화의 대작화와 장르 다양화도 중요한 요소다. 배우들 개인의 연기력에 의존하는 멜로 드라마.코미디와 달리 40억원 이상의 제작비가 들어가는 액션.SF.팬터지 영화에선 아무래도 '볼거리' 가 우선되는 까닭이다.

하반기에 줄줄이 선보일 '로스트 메모리스' (이시명)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장선우) '내추럴 시티' (민병천) 등도 SF류의 대작들이다.

조PD는 "앞으론 할리우드와 유럽처럼 일반 극영화에서도 후반 작업의 비중이 날로 커질 것" 이라고 예상했다.

"그래도 시간이 너무 빠듯해요. " 김성수 감독이 볼멘 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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