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만 한다고 하우스푸어 없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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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한기자]  ‘하우스푸어(House poor)’. ‘집을 보유하고 있지만 무리한 대출로 인한 이자 부담 때문에 빈곤하게 사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인터넷 포털 네이버 지식백과의 설명입니다. 요즘 정치권과 금융권의 최대 관심사죠.

떨어지는 집값, 늘어나는 가계부채로 하우스푸어가 급증하고 있으며 이런 현상이 우리 사회를 큰 위기상황에 빠뜨릴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하지만 하우스푸어는 여전히 모호합니다. 얼마나 돈을 빌려야 무리한 대출인지, 어떻게 사는 게 빈곤한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와 관련 흥미로운 조사가 있었습니다. 취업 정보업체인 잡코리아가 국내외 기업 직장인 남녀 53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주택소유자의 절반 수준인 49%가 본인을 하우스푸어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지난달 여론조사업체인 한국갤럽은 주택 보유 10가구 중 2가구는 스스로 하우스푸어라고 생각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인터넷 포털 부동산 게시판에는 스스로를 하우스푸어라고 한탄하는 글이 넘칩니다. 어떤 네티즌은 ‘빼앗긴 아파트에도 봄은 오는가’ 같은 류의 하우스푸어를 대상으로 한 패러디 시를 33회까지 연재해 높은 클릭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 이야기’라는 반응이 많습니다.

자신을 하우스푸어라고 생각하는 연예인이 등장한 한 예능 프로그램의 ‘하우스푸어 특집’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적도 있습니다.

스스로를 하우스푸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너도나도 나는 하우스푸어”…경제연구소도 기준 제각각

전문적으로 경제 현상을 연구하는 곳도 하우스푸어를 정의하는 데 애를 먹고 있습니다. 기관마다 하우스푸어를 달리 정의하고 있네요.

KB경영연구소는 하우스푸어를 소득이 많지 않고 자산에서 부채가 많은 가구를 기준으로 산출했습니다. 생활소득(가구별 월 평균소득에서 최저생계비 뺀 금액) 대비 원리금 비중이 30% 이상인 ‘소득위험’ 가구이면서 자산대비 부채비율이 100%를 넘기는 ‘자산위험’ 가구가 하우스푸어라는 겁니다. 이렇게 산출하니 주택담보대출자의 약 16%인 81만 가구가 하우스푸어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통계청의 2010 가계금융조사를 활용해 하우스푸어를 뽑았습니다. 가처분소득 대비 원리금 비중이 10% 이상인 가구로 정의하니 한국의 하우스푸어는 2010년 기준 108만4000가구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총 1691만7000가구 중 주택보유가구(1070만5000가구)의 10.1%가 하우스푸어라는 결론입니다.

하우스푸어의 처지와 대책에 대한 판단도 다릅니다. 어떤 전문가는 “하우스푸어의 대다수가 중상위 소득 계층이고 원리금 상환능력을 보유하고 있어 원금 상환 기간을 조정하는 등 금융 조건만 조금 변경해 주면 된다”고 합니다.

또 다른 전문가는 “하우스푸어 대부분이 스스로 원금 상환능력이 없어 정부와 금융권이 모두 나서 지원해야 한다"고 봅니다.

하우스푸어 대책 현실화하려면 ‘산넘어 산’

이런 와중에 대선 후보들은 표심을 잡기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하우스푸어 대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지분매각’ 방식으로 하우스푸어를 돕겠다고 합니다.

공공기관이 주택담보대출 상환이 어려운 집주인의 지분을 사들여 은행빚을 갚도록 한다는 겁니다. 천문학적인 금액의 공적자금을 하우스푸어에게 주는 게 타당한가에 대한 기본적인 문제 제기부터 정책의 실현 가능성 등을 놓고 논란이 한창입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나 안철수 후보도 하우스푸어 대책을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집니다. 정부 재정뿐 아니라 금융권까지 동원한 방대한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금융당국은 하우스푸어와 관련해 재정을 투입할 상황은 아니라고 인식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 “정부가 개입해 지원방향을 결정하려면 형평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 대상선정 등 신중하게 검토해야할 게 많다. 아직 구체적으로 지원 여부나 대상, 방법을 논의할 단계가 아니다”고 합니다.

아직 대선 후보들의 공약이 현실화할 수 있을지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정책이든 논란은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하우스푸어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현재 고통받거나 잠재적 두려움의 대상인 문제는 더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예 지원을 해줄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우스푸어는 무리한 대출을 얻어 결국 실패한 투기꾼’이라며 ‘차라리 어렵게 전세살이를 해온 세입자 지원을 늘리라’는 주장도 만만찮습니다.

하우스푸어 대책은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보입니다. 누구를 얼마나 많이 지원할지, 어떤 방법으로 공적자금을 투입할지, 투자 실패 책임은 누가 얼마나 질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사람들에 대한 형평성 논란을 잠재울 방법은 있는지 등 첩첩산중입니다.

대선후보들이 단순히 표심을 얻기 위해 무리한 대책을 경쟁적으로 발표해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대선 기간이 실제로 지킬 수 있는 하우스푸어 대책을 마련하는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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