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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을…" 강남 몰려오는 외국인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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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3일 영동대로 코엑스 앞에서 열린 국제평화마라톤대회 참가자들이 출발 전 싸이의 ‘말춤’을 추며 몸을 풀고 있다. [사진 강남구청]

3일 오전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이곳을 찾은 독일인 신혼부부 조엘(35)과 애나(35)는 싸이 얘기가 나오자 당장 말춤을 추어 보였다. 조엘은 “싸이의 ‘강남스타일’ 때문에 서울이 궁금해졌고 결국 허니문도 한국으로 오게 됐다”며 “사찰에도 관심이 많아 오늘은 삼성동 봉은사에 들를 예정”이라고 말했다. 부인 애나는 “친구들이 우리 신혼여행에 대해 무척 궁금해 한다. 우리의 경험담을 듣고 서울 여행을 결정하는 친구들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달 전 한국에 왔다는 러시아의 리아(27·모델)는 “웬만한 즐길거리가 다 모여 있는 강남은 한국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이라며 “강남 거리를 걷다 보면 싸이를 만날 수 있을 것도 같아 설렌다”고 말했다.

강남이 돌연 세계인의 ‘GANGNAM’으로 부상했다. ‘강남스타일’ 덕분이다. 강남이 뭔지도 모른 채 말춤 대열에 동참했던 이들은 이제 “도대체 강남엔 뭐가 있는지”를 궁금해 하고 있다. 싸이의 뮤직비디오와 공연 동영상엔 “강남에서 저렇게 놀아 보고 싶다”는 댓글이 자주 등장한다. 싸이 노래 덕분에 강남이 이제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 된 것이다. 강남이 뉴욕 소호, 런던 웨스트엔드처럼 유명 지역으로 부상할 수도 있을 거라는 관측까지 나온다.

한국인에게 강남은 대표적인 부촌이지만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에겐 ‘시간이 남으면 가는 곳’에 지나지 않 았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지난 해 서울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은 곳은 명동(55.3%), 동대문시장(45.8%),남대문시장(33.7%), 고궁(31.8%), 남산(29.1%, 이상 중복응답) 순이었다. 상위 10위권에 포함된 강남권 방문지는 잠실 롯데월드(20.6%)가 유일하다. 명동에서 쇼핑을 하고 고궁을 본 후 3~5일 만에 마무리되는게 일반적인 한국 여행 일정이었다.

이 때문에 한국 관광산업 성장을 위해선 새로운 ‘방문 축’을 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방문 축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방문객의 일정 연장으로 이어지고 관광객 1인당 지출 증가로 이어진다. 외국 관광객의 동선을 ‘광화문 축’에서 ‘강남 축’ 혹은 홍대-신촌 일대의 ‘신촌 축’으로 연장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실천 방법은 없었다. 최근 강남 일대의 의료·성형 관광이 주목받긴 했지만 평범한 관광객까지 유인하기엔 역부족이었다.

2일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 앞에서 직원들이 세일 흥행을 기원하며 말춤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뉴시스]

올여름 싸이 열풍으로 외국인 방문지 선호도 순위에 변화가 생길지 주목된다. 한국관광공사는 ‘강남스타일’ 열풍으로 ‘강남 스타일 관광’의 상품성을 따져보고 있다. 공사는 29개 해외 지사를 통해 강남 스타일을 주제로 한 팸플릿을 배포하고 있다. ‘1일 강남 스타일 투어’라는 제목의 이 안내문은 청담동 마사지, 가로수길 브런치,압구정동 쇼핑으로 강남 스타일을 완성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뮤직비디오에 소개된 한강 오리배를 탄 후 저녁엔 첨단 클럽에서 말춤을 춰보라고 소개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 공사 홍보실 김지선씨는 “각 지사에서 현지 여행사와 상품 개발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강남구청도 ‘강남스타일’ 인기를 지역 방문과 쇼핑, 행사 참여로 등으로 연결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있다. 6년째 ‘강남 페스티벌’을 열어 온 강남구는 특히 올해 기대가 크다. 외국인 방문객 증가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장원석 홍보실장은 “올해는 ‘강남스타일’ 때문에 강남에 대한 문의가 많다”며 ‘한국을 비교적 잘 아는 일본과 중국 외의 다른 지역 외국인들이 더 많이 강남에 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남구는 7일 영동대로에서 소녀시대, 슈퍼쥬니어, 동방신기 등이 출연하는 ‘한류 페스티벌’ 홍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3일 열린 국제평화마라톤대회에서 ‘강남스타일’로 몸을 푸는 ‘말춤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문화·쇼핑 등 체험형 관광상품 개발해야
현장에서 변화는 이미 감지되고 있다. 신사동 가로수길 상인 김종수(40)씨는 “외국인으로는 쇼핑하길 좋아하는 일본인이 가장 많았는데 요새는 서양 관광객이 자주 보인다”고 전했다. 소비지향적으로 종종 지탄을 받는 강남의 유흥문화가 경쟁력 있는 체험형 관광상품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흥미롭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심원섭 관광정책연구실장은 “한국식 클럽문화, 놀이문화 등을 접목하면 독특한 한국적 콘텐트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며 “‘강남스타일’을 계기로 전형적인 관광지가 아닌 서울 구석 구석에 관심을 갖는 계층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심 실장은 “이를 위해선 방문자가 즐길 수 있는 콘텐트를 개발해 채워넣어야 한다”며 “청담동 갤러리와 압구정동 쇼핑가, 강남권 공연장과 클럽을 잇는 세심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강남에서 만난 관광객 중엔 싸이 뮤직비디오를 보고 한국의 ‘밤문화’에 호기심이 생겼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일본관광객 유키(26·대학생)는 “뚱뚱하고 우스꽝스러운 싸이와 함께 춤을 추는 사람들을 보고 한국 클럽문화가 궁금해졌다”며 “내일 강남에 있는 한 클럽에 가 볼 생각인데 뮤직비디오 분위기라면 진짜 재미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가로수길을 찾은 멕시코 출신 미국인 제라르도 발도비노스(52·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미국 클럽에서도 모두 말춤을 출 정도로 싸이의 인기가 좋다”며 “싸이 때문에 숙소도 강남 한복판에 잡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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