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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를 만들어 보자 만든 막걸리 한 잔에 춘향이와 몽룡이를 만날 수도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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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강일구]

술을 빚었다. ‘또롱 폭 피웅’. 청아한 새소리에 술 항아리를 열어보니 새는 없고 보글보글 술이 튀며 소리를 낸다. 술 익는 향 또한 집 안 구석구석을 아른아른한 꽃밭으로 만들고 있다. 외국에서는 사람을 초대하면서 쿠키를 구워 좋은 냄새를 풍긴다고 한다. 어릴 적 엄마가 구워주던 쿠키 생각이 아련해지도록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굳이 그런 냄새를 찾자면 술 익는 냄새 아닐까.

 언젠가 와인 붐이 일면서 ‘신의 물방울’이라는 만화와 드라마가 인기 절정인 적이 있었다. 그때 한 장면. ‘샤토 무통 로칠드’를 마시고 주인공 ‘토미노 잇세’가 했던 말이다.

 “육중한 필치로 캔버스에 물감을 몇 겹이나 겹쳐 그린 밀레의 ‘만종’. 해 질 녘 하늘에 끝없이 울려 퍼지는 종소리에서 신의 목소리를 느끼고 조용히 머리를 숙이는 농부 부부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고 했던가. 그때는 너도나도 비슷한 와인을 마시며 그 느낌을 생각하고 상상하는 게 대유행이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도 다 마케팅 전략인 것을.

 이제 와인 대신 막걸리다.

 24일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막걸리 용기 크기를 2L에서 10L로, 크기 제한 규제를 완화했다고 한다. 한동안 외국인들까지 나서서 찾던 막걸리가 올해는 대형마트에서도 매출 감소를 보이게 되자 정부까지 나서서 활성화시키기로 했다는데.

 대용량이면 포장비가 절감되어 질도 좋아질 거고, 야외 회식 때도 이용하기 쉬워 곧 옛날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 거다.

 ‘전통주의 인터넷 판매 활성화 방안’도 나왔다는데 사는 것도 좋겠지만 이참에 집집마다 한 번씩 만들어보면 어떨까.

 난 4년 전부터 해마다 두 번씩 술을 빚는데, 술 빚을 때마다 익는 소리를 듣는 귀가, 익는 냄새를 맡는 코가, 홀짝대는 입술이 그리 행복할 수가 없다. 술 자체가 위에 포만감을 주니 과음하지도 않게 되고. 또 한 번에 많이 만들어서 귀한 분들께 예쁜 병에 넣어 선물을 하면 다들 좋아하신다. 준비물은 찹쌀(쌀보다 찹쌀이 향도 좋고 뽀얗다)과 누룩과 물, 그리고 허리까지 오는 항아리. 장소는 아파트나 단독이나 상관없다. 찹쌀 찌는 것이 관건인데 방앗간에서 쪄 가지고 오면 쉽다. 물과 누룩과 쪄온 찹쌀을 섞어 항아리에 넣고 10~15일 정도 기다리면 끝이다. 김치 담그는 것보다 훨씬 쉽다. 누룩은 인터넷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다. 누룩 보내면서 같이 넣어주는 ‘전통주 만드는 법’ 레시피를 따라하면 쉽다.

 낼모레가 추석이다. 귀한 분들께 내가 직접 빚은 향기로운 막걸리를 한 병씩 선물할 거다. 추석 상에 둘러앉아 눈을 감고 다들 한 잔씩 하면, 밀레의 ‘만종’에 나오는 농부 부부 대신 광한루에서 널을 뛰는 춘향이와 이를 몰래 바라보는 이몽룡이 보일는지 모른다.

글=엄을순 객원칼럼니스트
사진=강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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