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척수마비 등 난치병 치료 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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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병은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도세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발생한다. 척수마비증은 척수신경이 끊어져 생긴다. 문제는 췌도세포나 척수신경은 재생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췌도세포와 척수신경세포를 새로 만들어 췌도와 척추에 각각 넣어줘야 한다.

황우석 교수팀이 이번에 올린 개가는 이 같은 각각의 세포를 만들 수 있는 줄기세포를 환자 맞춤형으로 만들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특히 성별이나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줄기세포를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은 많은 난치병 환자에게 희망을 주기에 충분하다. 새로 만들어진 11개 줄기세포의 몸 세포 기증자에는 두 살의 저감마글로블린혈증 환자, 여섯 살의 소아당뇨 환자, 33세와 56세의 척수마비 환자 등이 들어 있다. 11개 줄기세포 중 3개의 몸 세포 주인은 여성이 3명, 남성이 8명이다. 이는 나이와 성별에 관계없이 줄기세포를 만들어 자신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몸 세포는 피부나 내장 등 신체를 이루고 있는 세포로 정자.난자와 같은 생식세포와 구별된다.

몸 세포 주인들은 앞으로 이 줄기세포로 병이 난 장기의 세포를 만들어 치료에 쓸 수 있게 된다. 남의 장기나 세포를 기증받을 때 일어나는 면역 거부반응 등의 문제가 전혀 없다. 자신의 세포로 만든 세포이기 때문이다. 현재 각 병원에서 시술하는 장기이식의 경우 이 면역 거부반응이 가장 문제인데,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면역 거부반응이 심하면 세포를 주사하자마자 충격으로 환자가 죽기도 한다. 연구팀은 11개 줄기세포를 각막이나 피부 세포 등 여러 세포를 분화시킨 뒤 몸 세포를 제공한 사람과 면역 거부반응이 있는지 시험했다. 그 결과 그런 거부반응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리아병원 박세필 박사는 "황 교수팀의 연구 결과는 줄기세포를 키우는데 필요한 피더(feeder) 세포로 쥐 세포 대신 환자 자신의 세포를 사용하는 등 줄기세포 생산 초기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했다"며 "난치병 치료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피더 세포는 줄기세포가 자라는데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하고, 특정한 세포로 분화되는 것을 억제하는 등의 역할을 한다. 쥐 세포를 사용할 경우 줄기세포가 동물 세포에 오염돼 순수한 인간 줄기세포를 얻는데 한계가 있다.

앞으로 환자 자신과 유전자가 완전히 일치하는 줄기세포를 만드는 것도 과제다. 현재 난자에서 핵을 제거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이 난자에는 아직 미토콘드리아가 남아 있다. 이를 완전히 제거하지 않고는 몸 세포 제공자와 유전자가 완벽하게 일치할 수 없다. 이번에 만든 11개 줄기세포 중 1개는 자신이 제공한 난자에 자신의 몸 세포를 집어넣어 만든 것이지만 나머지는 난자 제공자와 몸 세포 제공자가 다르다. 결국 10개 줄기세포의 유전자는 몸 세포 제공자와 다르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 미토콘드리아 유전자가 줄기세포를 이용한 임상시험에서 면역 거부반응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고 지적하고 있다. 줄기세포를 필요로 하는 세포로 키우고, 동물실험.임상을 통한 안전성 검증 등 줄기세포를 실제 치료에 적용하려면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사이언스지의 정책 포럼에서 미국 스탠퍼드대 데이비드 매그너스 박사와 밀드리드 초 박사는 황 교수의 연구 결과를 대단한 성과라고 평가하면서 "난자 공여자에 대한 국제적인 감시와 윤리적인 문제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신약 개발 등 다양한 분야 활용" 황 교수 전화 인터뷰

"환자 자신의 세포로 줄기세포를 만든 것은 환자 치료뿐 아니라 맞춤 신약 개발, 발병 요인 분석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해외 출장 중인 서울대 황우석 교수는 전화 인터뷰에서 "이번에 개발한 줄기세포는 난치병 치료 등 의학 분야에 새로운 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환자의 세포로 만든 줄기세포를 분석하면 유전적 또는 환경적으로 어떤 영향 때문에 질병이 발병했는지 등을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황 교수는 "성급한 환상을 가져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황 교수는 복제양 돌리를 탄생시킨 이언 윌머트 박사와 공동연구 협정을 맺기 위해 영국을 방문했다. 황 교수는 "난자를 한 번만 채취해도 줄기세포를 만들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에 환자의 부담도 덜게 됐다"고 말했다. 난자를 인위적으로 뽑아내려면 난자 제공자에게 고통이 따른다. 이런 불편함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신약 개발 기간도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으로 황 교수는 기대했다. 신약 후보 물질이 어떤 질병에 효능이 있는지, 부작용은 없는지 등을 쉽게 실험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미국 버클리대 김성호 박사가 신약 개발을 위해 우리나라가 보유하고 있는 줄기세포를 이용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요청을 이미 한국 정부에 해놓았다고 황 교수는 전했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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