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의 음식잡설] 수수한 시골 ‘나물 백반’ 사라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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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음식 칼럼니스트

요리에 쓸 특산물을 찾아 지역을 떠돌곤 한다. 서해안의 섬에서 시작해 남도를 돌아 동해안의 북방한계선까지 이른다. 끼니도 때워야 하고, 별미도 맛볼 겸 유명 식당 순례도 겸한다. 예전 같으면 정보가 없어서 나름의 노하우로 맛있는 집을 찾곤 했다. 택시기사의 추천을 받거나 별미집이 많이 몰려 있게 마련인 군청이나 법원 같은 관공서 앞으로 발길을 돌렸다. 심지어는 해당 관청 공무원에게 전화를 걸기도 했다. 친절한 그들의 소개를 받아 맛집을 찾았을 때, 비록 한 그릇의 밥이지만 뿌듯한 쾌감이 있었다.

요즘은 바로 스마트폰으로 검색한다. 동네의 이름난 집을 순식간에 찾아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심지어 내비게이션의 안내로 곧장 식당 안마당까지 들어갈 수 있다. 초고속으로 ‘손실 없이’ 지역의 일미를 맛봤다는 기쁨으로 흥분한 것도 잠시, 작은 의문이 생겨난다.

그 전에는 식당을 물어 물어 찾아가면서 미처 못 봤던 동네를 느긋하게 구경하곤 했다. 길을 묻기 위해 차를 세우고, 수십 년 동안 마을을 지킨 어른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얻어 들을 수 있었다. “그 식당은 부엌의 할망구가 늙어서 맛이 옛날만 못해.” “요샌 여름인데 무슨 동치미 막국수를 찾아? 그냥 비빔 막국수 먹는 게 나아.” 뭐, 이런 거였다. 아예 나그네의 손을 잡고 자신의 지인이 운영하는 식당에 데려다 주고 신신당부를 하는 분들도 있었다. 이런 거짓말도 보태시면서 말이다. “이 친구들, 오늘 들어온 횟감으로 제대로 줘봐. 서울서 온 내 조카야.”

이젠 그런 다양한 맛의 세상이 다 끝나가는 것 같다. 인터넷 검색 순위가 높은 식당으로만 사람이 몰린다. 그저 인터넷이 가르쳐주는 대로 시키고 먹는다. 그래서 지역에서는 1등 집만 살아남는다는 말이 나온다. 과장된 정보로 손님을 끄는 ‘바이럴 마케팅’을 동원하는 식당도 부지기수다. 검색에 많이 노출되는 식당만 잘되니, 다른 개성 있는 인근 식당도 유명 식당처럼 메뉴를 바꾼다. 잘하는 것에 집중하지 못하고 대세를 따른다.

이뿐만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지역의 식당은 ‘정식’이라는 이름으로 한 상 떡 벌어지게 차리는 바람이 불고 있다. 예전부터 다니던 밥집들도 반찬을 한 상 가득 깔면서 모두 남도식 잔칫상을 모방한다. 종이나 비닐을 까는 것까지 흡사하다. 두어 가지 반찬에 소박하게 먹던 음식도 정식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화려해졌다. 다 먹고서 사진을 찍어봤다. 절반도 먹지 못하고 반찬이 남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다지 젓가락이 안 가는 반찬을 구색으로 가득 차렸기 때문이었다. 전은 언제 부쳤던 것인지 말라 있고, 먹지도 않은 이름 모를 반찬이 겉만 번지르르하게 밥상을 장식하고 있었다.

아아, 소소하고 수수해서 좋았던 그 나물 백반은 어디로 갔나. 된장에 쓱쓱 비벼서, 나물 몇 가지로 흐뭇했던 시골 밥상은 사라지고 마는 걸까. KTX와 고속도로, 인터넷의 도래는 지역을 한데 묶는 효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이런 뜻밖의 부작용도 생겨난다. 이 땅의 개성 강한 음식을 사랑하는 나그네들은 그래서 오늘도 불안해진다.

박찬일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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