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가계대출 금융 부실 경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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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계 대출을 담당하는 한 은행원이 18일 서류를 살펴보고 있다. 신인섭 기자

금융감독 당국이 18일 가계 부문의 금융 불안을 경고한 것은 외환위기 이후 금융 관련 위험이 금융회사에서 가계 부문으로 이동했다는 판단에서다. 가계 부채의 조정이 더딘 가운데 금리 상승이나 주가 하락으로 가계 빚이 다시 급증하면 금융 불안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저금리 기조가 한동안 이어져 가계가 은행 돈을 빌려쓸 때는 좋았지만 금리가 오를 경우 이자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전체 가계 대출금 301조4000억원(지난해 말 현재) 가운데 84%가량은 금리 변동에 따라 이자가 달라지는 것으로 금융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더구나 미국이 최근 연 1%에서 3%까지 정책금리를 올린 데다 국내외 금리차 확대에 따라 우리나라도 하반기에는 금리 상승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기업 실적 악화로 주가 하락 등 금융환경이 나빠질 경우 가계가 직격탄을 맞아 소비회복의 불씨도 꺼질 수 있다.

케네스 강 국제통화기금(IMF) 서울사무소장은 이날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유로머니 콘퍼런스에서 "정부의 신용불량자 채무 재조정 계획에 따라 현재 가계 부채 가운데 23%가량이 재조정이나 탕감받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신불자 구제대책을 더욱 활성화해 가처분 소득을 늘리고 이것이 소비로 연결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 무엇이 문제인가=가계 부문의 금융위기 우려는 외환위기 이후 부실을 털어낸 금융회사가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10월 국내 은행권에서 이자가 연 4%를 넘는 특판예금 판매 경쟁을 시작한 데 이어 올 들어선 경쟁은행의 '대출 고객 빼앗아 오기'가 본격화했다. 타행의 주택담보대출을 상환하는 데 필요한 금리를 할인해 주고, 예금상품에 가입하면서 다른 상품에 들면 이자를 덤으로 주는 교차판매 상품 경쟁도 치열했다. 은행이 돈을 굴려 얻는 수익이 연 4%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역마진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시중은행의 부행장은 "출혈경쟁을 막는 방법은 딱 두 가지로 언론이 나서서 싸움을 말려 주든지 금융감독 당국이 칼을 뽑는 길밖에 없다"고 토로할 정도다.

출혈경쟁은 제2금융권에서도 치열하다. 올 들어 대부분의 보험사가 자동차 보험료를 과도하게 내려 지난해 이맘때보다 보험료는 평균 5% 인하됐다. 심지어 A화재는 최근 음주운전.뺑소니사고 등의 전력이 있는 가입자의 특별할증료를 50%에서 25%로 대폭 내렸다. 이 같은 금융권의 경쟁은 가까스로 빚더미에서 벗어나고 있는 가계의 금융 관련 위험을 다시 증폭시키고 있다.

주택담보대출은 2001년 86조원에서 지난해 말 170조원으로 불어난 데 이어 올 들어서도 5조원이나 증가했다.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돈을 빌려 부동산 투자에 나서는 가계가 늘었기 때문으로 하반기 중 금리 상승이 단행되면 직격탄을 맞게 된다. 자칫 고금리 기조가 2~3년간 지속되면 부동산 가격도 약세로 돌아서 저금리의 후유증을 고스란히 뒤집어쓸 수 있다.

카드사의 연체율도 개선됐지만 아직 15%(3월 말 기준)나 된다. 가계가 갚아야 할 빚이 여전히 많다는 의미다. 김창록 금감원 부원장은 "초기에 가계 부실의 불길을 잡아야 카드 사태의 재연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 대책은 뭔가=금융감독원은 금융권역별로 실태 점검에 나서 과도한 경쟁요인을 밝혀내고 필요한 시정 조치를 할 계획이다. 개인 고객에 대한 체계적인 금융교육을 강화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금리가 낮다는 이유만으로 과도하게 대출받은 뒤 금리가 오르거나, 실직 또는 사업부진으로 이자를 갚지 못하는 경우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겠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이를 위해 재정경제부.금감원.한국은행 등에서 산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금융교육을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체제를 구축하기로 했다.

금융상품의 리스크(위험)에 대한 공시도 강화할 예정이다. 금융회사는 고객에게 자금 조달이나 운영과 관련된 리스크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고 설명함으로써 고객이 '자기책임'하에 투자하는 금융거래를 유도키로 했다. 출혈경쟁이 비슷한 상품을 놓고 벌어진다는 점에서 다양한 금융상품 개발도 추진된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 상황이 바뀔 때 위험이 가계부문으로 전가되지 않는 안정적인 간접투자상품을 다양하게 개발하도록 제도를 정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동호.김창규.김준술 기자 <dongho@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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