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정신적으로 가난한 대한민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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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김창민
서울대 교수·서어서문학

한국의 2010년도 자살률이 세계 1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2.6배라고 한다. 1년에 1만556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지난 5년간 다른 나라들은 자살이 줄어드는데 우리만 늘어났다. 최근엔 입에 담기조차 싫은 성범죄 사건 소식이 줄을 잇고 있다.

 사회가 무너지고 있다. 인간성이 상실되고, 가정이 파괴되고 있다. 그런데 위정자들은 경제지표에만 매몰되어 있다. 자살사건이 문제가 될 때마다 정부와 언론은 개인에게 그 책임을 돌린다. 늘 우울증이, 사회에 대한 이유 없는 분노가 문제라고 한다. 그 우울증과 분노의 원인을 제공한 사회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경제기적을 이루어 곧 선진국에 진입할 거라고 하는데 국민은 갈수록 더 살기 힘들어한다. 중산층은 점점 줄어들고 빈곤층이 늘어나고 있다.

 갈수록 물질 만능 풍조는 더해가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명품이 비싸게 팔리고 있다. 정부, 기업, 학교, 가정 구분 없이 모두가 ‘경쟁력’ 타령이다. 경쟁에서 이겨 더 많이 소유하자고 한목소리다. 드라마와 광고는 매 순간 황금만능 풍조를 조장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빈부격차는 갈수록 심해지고, 상대적 박탈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갈수록 승자는 소수로 좁혀지고 있다. 그 경쟁에서 진 패자는 돈 이외의 다른 삶의 가치와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남은 것은 자살뿐이다. 마침내 7년 연속 자살률 금메달 국가가 되었다.

 영국 신경제재단(NEF)에서 3년마다 국가별 행복지수를 발표하는데, 매번 10위 안에는 코스타리카를 비롯한 중남미 국가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못사는 나라라서 순위가 높은 것은 아니다. 아프리카 나라들은 대부분 하위다. 2012년에 한국은 63위, 미국은 105위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삶의 만족도가 낮기 때문이다. 내 개인적 경험과 판단으로 중남미인들을 행복하게 하는 가장 큰 요소는 자족하는 삶의 태도와 원만한 인간관계다. 그들은 대체로 선진국 국민에 비해 극심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지 않다. 이웃 간 관계가 소위 ‘선진사회’보다 개방적이고, 가족 간 유대가 더 잘 유지되고 있다. 기독교 문화 덕분에 물질적인 욕구가 상대적으로 덜하다. 스페인 식민지배가 남긴 아이러니다.

  행복을 연구한 사람들에 따르면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넘어서면 소득의 증가가 행복지수를 높이는 데 거의 기여하지 못한다고 한다. 미국·일본·독일의 사례에서 공통으로 드러났다. 동서고금, 모든 성현의 말씀대로 물질은 인간의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에야 신자유주의의 한계를 공감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사회도 붕괴하고, 환경도 파괴된다. 행복한 삶은커녕 생존마저 위태로워질 뿐이다. 무한경쟁을 앞세우고, 약육강식을 당연시하는 ‘시장만능주의’ 사회에서 하물며 생명존중의 풍토가 조성되겠는가?

  이제 우리는 일류대학과 돈에 매달리지 않는 분위기를 가정과 학교, 언론과 정부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때다.

 국가의 경쟁력은 결코 획일화된 경쟁에서 나오지 않는다. 인간의 다양한 가치를 존중하고 다양한 능력이 보상받는 역동적인 풍토에서 나온다. 제2, 제3의 김기덕 감독, 박태환 선수, 한류스타들이 쏟아지는 풍토를 만드는 것이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다. 이태석 신부님 같이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분이 많이 배출될 때 행복한 국가가 되는 것이다.

 소수만 승자가 되고 다수는 패자가 되는 사회를 국민은 원하지 않는다. ‘인간성이 상실된 경제대국’이 대한민국의 미래상이 되어선 안 된다. 우리도 이제 ‘경쟁’보다는 ‘공생’을 앞세울 때다. 이제 ‘새마음 운동’이라도 해서 정신적 빈곤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김창민 서울대 교수·서어서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