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이철호의 시시각각

금태섭 폭로는 어디를 겨냥했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8면

이철호
논설위원

금태섭(이하 직책 생략)-정준길의 폭로전이 잔불 정리 단계에 접어드는 양상이다. 이제 진실은 ‘불출마 협박’과 ‘과장 폭로’ 사이에서 유권자의 판단에 달렸다. 역시 압권은 친구에 관한 해석 차이다. 금태섭은 “그냥 아는 사이”라 손사래 치고, 정준길은 “친한 사이”라 매달린다. ‘연애’나 ‘친구’ 같은 주관적 개념에는 언제나 매달리는 쪽이 을(乙)이다. “정치 때문에 친구 팔아먹느냐”는 부담만 떨치면 금태섭의 판정승이다. 새누리당은 심야에 오간 이모티콘 문자까지 공개하면서 “진짜 친구”라고 우긴다. 하지만 애처로운 물타기다. 정말 친한 사이라면 아예 폭로조차 안 하는 게 맞다.

 폭로 충격에도 박근혜 지지율은 별반 흔들리는 조짐이 없다. 워낙 콘크리트 지지층이기 때문이다. 파편에 맞아 신음하는 피해자는 따로 있다. 우선 ‘목동녀’다. 음대 나오고, 서울 목동에 살며, 나이가 30대인 적지 않은 여성들이 안철수와 그렇고 그런 사이가 아니냐는 질문에 시달린다. 서울대도 피해자다. 법대 동기끼리 물고 뜯자 심지어 “나라 말아먹기 전에 차라리 문 닫으라”는 인터넷 댓글까지 올라왔다. 서울대 출신들은 “이제 ‘모래알’을 넘어 ‘먼지’라 불려도 할 말 없다”며 고개를 숙인다. 애플도 뜻밖의 희생자가 됐다. 금태섭은 “녹취하려 해도 아쉽게 내 아이폰은 녹음이 안 된다”고 했다. 아이폰도 앱만 다운로드 받으면 되는데….

 금태섭은 4월 16일 한겨레신문에 김용민의 막말 동영상에 대한 관전평을 쓴 적이 있다. “새누리당은 이미 (2월 중순 직후) 동영상을 찾아내 가장 적절한 시기를 기다린 것으로 보인다. 선거를 앞두고 방어가 어려울 때(4월 2일), 바로 그때를 노린 것”이라는 내용이다. 그는 “폭로는 극대화 시점을 노렸다”는 부제까지 달았다. 40대답지 않게 노련한 네거티브 전문가 냄새가 묻어난다. 자신의 칼럼대로라면 금태섭도 매우 치밀하게 폭로를 준비했고, 효과가 극대화되는 시점을 노렸을 게 분명하다. 왜 그는 하필이면 지난 6일 터뜨렸을까.

 그날 박근혜는 전남 신안의 태풍 피해 현장을 방문했다. 김대중·노무현 묘소나 전태일 재단을 찾았을 때와 견주면 정치적으로 예민한 발걸음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날의 변곡점은 안철수와 민주당 쪽에서 찾아야 할 듯싶다. 당시 안철수는 재개발 딱지·사외이사 논란으로 ‘세인트(聖人) 철수’ 이미지가 흔들리고 있었다. 민주당에는 최대 관심 지역인 전남·광주 경선이 열린 날이다. 호남 민심이 문재인에게 쏠리면 안철수와 지지율이 역전될지 모를 미묘한, 딱 그 시점에 맞춰 폭로가 터져 나온 게 공교롭다.

 냉정하게 보면 지금 안철수의 최대 경쟁자는 박근혜가 아니다. 야권 후보 단일화까지는 민주당 후보다. 현재 안철수 바람은 ‘박근혜 대항마’를 찾는 호남의 전략적 선택에 크게 힘입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상대적 지지는 언제 무너질지 모를 허약한 기반이다. 안철수의 맷집이 검증을 견디기 어렵거나, 민주당 후보로도 승산이 있다고 호남 민심이 돌아서는 순간 곧바로 반 토막 날 수 있다. 안철수가 ‘예능정치’와 ‘신비주의’로 쌓아온 공든 탑을 지키려면, 민주당 후보의 싹을 자르며 ‘박근혜-안철수’의 대선구도를 최대한 각인시키는 데 무게를 실을 수밖에 없다. 이번 폭로도 새누리당을 되치기 하는 척하며 내심 지지율 격차를 좁혀오는 문재인을 찍어 누르는 성동격서(聲東擊西) 냄새를 풍긴다.

 폭로전의 진실을 살짝 엿보려면 같은 대학 동기들의 의견을 구하는 게 옳을 듯싶다. 새누리당의 기대와 달리 대부분 “금태섭-정준길은 그리 친한 사이가 아니다”는 쪽이다. 또한 상당수는 “둘 다 좀 튀는 스타일”이라 기억한다. 그런 튀는 대학 동기끼리 드잡이를 하면서 대선판이 진흙탕으로 변했다. 안철수 쪽은 결과적으로 문재인의 지지율을 내리 누리는 재미를 본 게 사실이다. 하지만 네거티브의 포연이 걷히고 나면 결국 남는 것은 팩트다. 이제 안철수도 대변인·저격수가 아니라 본인의 입으로 ‘목동녀’와 ‘재개발 딱지’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게 예의가 아닐까. 구름 위의 그가 어떤 민낯으로 맨땅에 강림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