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헬기’ 365일 24시간 가동 … 초응급 심장환자 90분 이내 살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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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남도 부여에 살고 있는 김모(45·여)씨. 최근 새벽에 심한 가슴통증을 느껴 인근 병원을 찾았다. 전날 밤부터 시작된 통증이 참기 힘들 정도로 심해졌다. 병원에선 심근경색이 의심돼 1분이라도 빨리 혈관을 뚫어주는 시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심근경색은 심장에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는 혈관(관상동맥)이 피떡(혈전)으로 막혀 심장근육이 죽는 병이다. 시간을 지체하면 사망할 수 있다. 병원은 곧바로 가천대 길병원에 닥터헬기를 요청했다. 닥터헬기는 응급환자를 신속하게 이송할 수 있다. 의료진이 탑승하고 자동심폐소생기 등 의료장비를 갖췄다. 김씨는 30분 만에 길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김씨는 길병원 도착 12분 만에 막힌 혈관을 뚫는 풍선확장술과 스텐트 삽입술을 받았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신속한 이송과 처치로 생명을 구했다.

가천대 길병원 심장센터 안태훈 센터장(심장내과)이 관상동맥 혈관 중재술로 환자의 심장혈관 협착 부위를 넓히고 있다. 이 병원은 365일 응급 심근경색증 환자를 신속하게 볼 수 있는 진료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사진 길병원]

 
급성심근경색 분야서 최우수 등급 받아

국내 사망원인 2위는 심장·뇌혈관질환이다. 환자를 살리려면 ‘시간’과 분초를 다투는 싸움을 해야 한다. 환자를 신속하게 병원으로 이송하고, 의료진이 조직적으로 대처해 응급조치까지 걸리는 시간을 얼마나 단축하느냐에 생사가 달렸다. 가천대 길병원(병원장 이명철) 심장센터는 이 조건을 갖춘 곳이다. 닥터헬기를 운영하고, 심혈관질환과 관련된 여러 진료과가 협진하는 다학제팀을 운영한다. 환자 이송과 시술에 걸리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해 환자의 생존율을 높이고 있다.

 길병원은 1995년 국내 처음으로 독립된 건물에 심장센터를 열고 심혈관질환 치료를 선도하고 있다. 길병원은 지난해 실시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평가 결과, 급성심근경색 등의 항목에서 최우수 등급을 받았다. 길병원은 급성심근경색 초기대응과 관련 ▶30분 이내 혈전용해제 투여 비율 ▶90분 이내 경피적 관상동맥중재술(스텐트 등으로 막힌 심장혈관을 뚫는 것) 비율 ▶입원 30일 이내 사망률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특히 모든 심근경색증 환자에게 90분 이내에 응급시술을 시행했다. 길병원 심장내과 이경훈 교수는 “급성심근경색증은 증상이 나타난 순간부터 얼마나 빨리 막힌 혈관을 뚫느냐가 환자의 생명을 가른다”며 “증상이 발생한 후 응급시술이 가능한 병원으로 내원하기까지 시간을 줄이는 게 필수”라고 설명했다.

여러 분야 전문의 협진 ‘다학제 시스템’

심근경색증 환자에게 시간은 생명이다. 길병원 심장센터는 더 많은 환자를 살리기 위해 ‘직접 보고 시스템’을 운영한다. 심근경색증 환자가 응급실에 도착한 후 스텐트, 풍선확장술 같은 관상동맥중재술을 받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을 최대한 단축하는 시스템이다.

 응급실에 도착한 심근경색증 환자의 심전도 결과는 바로 심장내과 전문의에게 보내진다. 이를 확인한 심장내과 전문의는 응급시술을 결정해 시간이 지연되는 것을 차단한다. 길병원 안태훈 심장센터장은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직접 보고 시스템에 따라 의료진이 퇴근한 후, 명절, 공휴일에도 바로 연락이 취해진다”며 “응급시술을 시행하기까지 시간을 단축한 게 심평원 급성심근경색 평가에서 1등급을 유지하는 원동력”이라고 강조했다.

 길병원 심장센터의 또 다른 차별성은 다양한 진료과 전문의가 협진하는 ‘다학제 시스템’이다. 신경외과 9명, 신경과 6명, 재활의학과 3명, 심장내과 11명, 흉부외과 5명, 혈관외과 2명, 영상의학과 2명, 응급의학과 2명의 전문의들이 의견을 모아 신속하게 처치한다.

 안태훈 센터장은 “심혈관질환자는 뇌혈관질환은 물론 대동맥질환, 말초혈관질환까지 동반된 경우가 많다”며 “여러 분야의 전문의가 논의해 최적의 맞춤 치료를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다학제 시스템으로 치료 결과가 좋아지고, 환자의 입원기간이 줄어 등 환자와 보호자의 부담이 줄었다.

서해권역응급센터, 의사 30명 24시간 상주

길병원이 급성심근경색증에서 최우수 평가를 받은 비결은 무엇일까. ‘환자의 빠른 이송’과 ‘신속한 대처’라는 두 박자를 갖췄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는 국내 최고 응급의료기관 중 하나인 길병원의 서해권역응급의료센터가 있어 가능하다.

 서해권역응급의료센터는 우선 지난해 9월 국내 처음으로 응급의료 전용헬기인 닥터헬기를 도입해 수많은 생명을 살리고 있다. 닥터헬기는 심·뇌혈관질환 환자를 살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난해 9월 운항을 시작한 후 지난달까지 140명의 환자를 닥터헬기로 이송했다. 이중 심혈관질환자는 24명, 뇌혈관질환자는 26명이었다. 중증외상 환자(47명) 다음으로 많다. 길병원 응급의료센터는 이 같은 성과를 인정받아 2002년부터 10년 연속 우수 응급의료기관에 선정됐다.

  황운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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