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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도 혁신 본뜬 모방자” vs “삼성 배상액 많지 않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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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 소송이 경영·법학·디자인 분야에 ‘창의성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졌다. 정보기술(IT) 전문가는 물론 법학 교수, 특허법 변호사, 디자인 분야 칼럼니스트들이 외국 언론 지면을 통해 ‘디자인은 창조인가’ ‘모방은 혁신에 유용한가’ ‘특허의 경계는 어디인가’에 대한 토론을 연일 이어가고 있다. 두 IT 대기업의 분쟁이 둘 간의 이해관계나 업계의 손익계산을 넘어 학계에 지적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2일(현지시간) 미 경제 전문지 포브스에는 “모방은 창의성에 도리어 유익하다”는 칼 라우스티알라 캘리포니아대 LA캠퍼스(UCLA) 법학 교수와 크리스 스프릭먼 버지니아대 법학 교수의 주장이 실렸다. 이들은 ‘카피 제품이 유행 주기를 촉진해 패션업계를 살린다’는 ‘저작권 침해 역설론’을 펼쳐온 법률 전문가들이다. 애플과 삼성의 소송을 둘러싼 논쟁이 디자인과 경영 전반으로 퍼지자 포브스가 이들의 견해를 소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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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교수는 “애플 역시 많은 위대한 혁신가를 따라 한 연쇄 모방자”라며 애플 창업주 스티브 잡스가 1979년 제록스 연구센터에서 보고온 기술을 베껴 매킨토시 컴퓨터의 그래픽 사용환경(GUI)을 만든 것을 예로 들었다. 이들은 “제록스는 애플에 특허료를 요구하지 않았고, 우리도 애플의 카피를 비판할 생각이 없다”며 “모방이 있기에 현재의 트렌드가 물러가고 새로운 흐름과 수요가 창출되는 것”이라고 했다. 애플이야말로 이러한 ‘모방을 통한 혁신’의 최대 수혜자라는 것이다.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미 배심원단의 평결 직후에는 IT업계가 먼저 반응했다. 이날 미국의 IT 전문 유명 블로거 로버트 스코블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10억 달러 배상금은 삼성이 애플을 베낀 대가치곤 싸다”고 적었다. 또 “삼성이 큰 회사가 된 것은 림·노키아·HTC보다 먼저 아이폰을 베꼈기 때문”이라며 “이번 평결로 혁신가의 지위를 확고히 한 애플과 달리 삼성은 세계 시장에서 그러한 지위에 오르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후 논쟁은 기술·경영계 전반으로 옮아왔다. 포브스의 기술 전문 칼럼니스트 해이든 쇼네시는 지난달 26일 “삼성-애플 평결이 큰 실수인 이유”라는 글을 실었다. 그는 “디자인은 발명이 아니라 패션의 영역”이라며 “아이폰의 디자인은 뛰어나지만 디자이너 크리스 뱅글이 BMW 자동차를 새롭게 디자인한 것 이상의 수준은 아니다”고 평했다.

 이튿날 미국 특허 전문 변호사 리어니드 크라베츠는 IT 전문 매체 테크크런치 기고에서 “애플이 너무 뻔한(obvious) 것을 특허로 낸 뒤 돈을 뜯어낸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다”며 “그것이 시장에 적용된 지 수년이 지난 후에 ‘뻔하다’고 비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하루 뒤 포브스의 디자인 분야 전문 칼럼니스트 윙 코스너 역시 “디자인은 단순한 패션이 아니다”고 쇼네시의 주장을 반박했다. 하지만 그는 “디자인은 창조일 수도, 단지 외부 장식이 될 수도 있는데 애플 특허 중 일부는 후자”라며 “이번 평결의 문제는 현재 미국의 특허 체계가 이 둘을 구분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달 2일 스프릭먼 교수 역시 포브스 기사에서 이 점을 지적했다. 그는 “미국 특허법은 ‘기능’을 위한 부분에는 디자인 특허를 주지 않는데, 이것은 모호하다”며 “마우스의 ‘더블클릭’ 같은 것은 디자인인지 기능인지 혼란스럽다”고 예를 들었다. ‘더블클릭’에 대한 특허는 마이크로소프트가 2004년 미국 특허청에 등록해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이 회사는 이 특허권을 행사해 사용료를 받은 적이 없다.

심서현 기자

디자인 특허

제품 외양에 대한 보호권이다. 독창적 기술에 대해 내주는 실용특허, 새로운 식물 종을 개발했을 때 인정하는 식물특허와 함께 미 특허청에 출원 가능한 세 가지 특허 중 하나다. 등록일로부터 14년간 인정받는다. 이번 삼성-애플 소송에 해당된 애플 아이폰의 ‘둥근 직사각형 모서리’ 특허는 2007년 출원해 2009년 미 특허청 ‘D593087’로 등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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