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모든 게 변해야 하는 건 아닐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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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6호 28면

“7월 초 찌는 듯이 무더운 어느 날 해질 무렵” 한 청년이 거리로 나온다. “거리는 지독하게 무더웠다. 게다가 후텁지근한 공기, 혼잡, …독특한 여름의 악취, 이 모든 것들이 그렇지 않아도 혼란스러운 청년의 신경을 뒤흔들어 놓았다.”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은 늘 이렇게 병적이고 음산한 분위기가 배어 있고 살인과 자살, 범죄와 돌발사건이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데 『죄와 벌(Crime and Punishment)』은 여기에 스릴러 기법까지 가미돼 더욱 극적이다.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처럼 시작부터 뭔가 위험이 닥쳐올 것을 예고하면서 끊임없이 긴장을 고조시킨다.

박정태의 고전 속 불멸의 문장과 작가 <19>『죄와 벌』과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 살인을 저지르는 대학생 라스콜리니코프의 이야기지만 범죄보다는 심리에 초점을 맞춘다. 가령 범행 현장으로 가면서 그는 생각한다.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사람도 이렇게 도중에 만나는 모든 것에 집착하겠지.” 도끼를 꺼내는 순간 현기증마저 느낀다.
그는 사람들을 소수의 비범한 인간과 다수의 평범한 인간으로 나눈다. 지배하도록 태어난 사람들과 지배받고 복종하기 위해 사는 사람들이다. 나폴레옹 같은 초인적인 지도자들은 선과 악의 저편에 있고,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허용된다”.

고리대금업자 노파는 “가난한 사람에게 빌붙어 먹고사는 흡혈귀이자 더러운 해충”일 뿐이다. 그는 이 노파와 그녀의 여동생을 살해하고 모든 증거를 인멸한다. 당시 현장에 있던 인부가 혐의를 받고 엉뚱하게 범죄를 자백하지만, 그는 견딜 수 없는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다 순결한 마음씨의 창녀 소냐에게 모든 사실을 고백한다. “나는 그때 알고 싶었던 거야. 다른 사람들처럼 내가 이(蝨)인가, 아니면 인간인가를 말이야. 내가 벌벌 떠는 피조물인가, 아니면 권리를 지니고 있는가. 내가 노파에게 간 것은 다만 시험해 보기 위해서였어. 내가 살해한 것은 나 자신이지 그 노파가 아니었어! 나는 나 자신을 영원히 난도질해 버린 거야….”

여기서 소냐의 그 유명한 대사가 나온다. “지금 즉시 네거리로 나가서 먼저 당신이 더럽힌 대지에 절을 하고 입을 맞추세요. 그 다음 온 세상을 향해 모든 사람에게 말하세요. ‘내가 죽였습니다!’라고. 그러면 하느님께서 또다시 당신에게 생명을 보내 주실 거예요.”라스콜리니코프는 자수하고 소냐는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나는 그를 따른다. 그는 유형지 감옥에서 병을 앓다 병원 문 옆에 서 있는 소냐를 보는 순간 마음속에 어떤 감동이 인다. 그리고 비로소 진정한 참회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는 다만 느꼈다. 변증법 대신에 삶이 도래했고, 의식 속에서 무언가 전혀 다른 것이 형성돼야만 한다는 것을.”

그는 마침내 악령과의 투쟁에서 이겨낸 것이다. 『죄와 벌』의 매력은 참담한 비극 속에서도 다시 부활하는 개인의 저력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 라스콜리니코프를 부활시킨 것은 소냐의 사랑이었다. 한 사람의 마음속에는 이처럼 다른 사람을 살려낼 수 있는 힘이 숨어 있는 것이다.『죄와 벌』의 주변 인물들 역시 극적이다. 악의 화신 스미드리가일로프를 보자. 그는 돈 때문에 결혼하고 하녀를 능욕하고 아내마저 죽여 막대한 유산을 차지한다. 그러나 두냐에게 사랑을 거절당하자 자살을 택하는데 자살하기 전 소냐에게 아무 이유 없이 거액을 내놓고, 고아가 된 그녀 동생들의 생활비까지 다 챙겨주고, 어린 약혼녀 부모에게도 엄청난 선물을 준다. 돈으로 살 수 있는 쾌락과 그렇게 충족된 욕망이라는 게 얼마나 헛된 것인지 멋지게 증명하고 확 죽어버리는 것이다.

알코올 중독자 마르멜라도프는 또 어떤가. 그는 아내가 숨겨둔 첫 월급을 몽땅 훔쳐 한 푼도 남김없이 술값으로 써버린 것도 모자라 아내가 사준 제복까지 팔아버리고, 굶는 가족을 보다 못해 창녀가 된 딸 소냐를 찾아가 술값을 구걸한다. 그는 말한다. “가난은 죄가 아니라는 말은 진실입니다. 그러나 빌어먹어야 할 지경의 가난은, 그런 극빈은 죄악입니다. 선생은 아무 희망도 없이 돈을 꾸러 가 보신 적이 있습니까?”

내가 『죄와 벌』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목은 라스콜리니코프가 감옥에 돌아온 순간이다. “그날 그는 예전에 그의 적이었던 모든 유형수가 그를 다르게 쳐다본다는 생각을 했다. 그 스스로가 자진해서 그들과 이야기를 시작했고, 그들은 그에게 상냥하게 대답했다. 이제야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벌써 예전부터 이랬어야만 하는 게 아니었을까. 정말 모든 것이 변해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도스토옙스키는 평생 단 한 번도 선금을 받지 않고 작품 원고를 써본 적이 없을 만큼 궁핍했고, 스물여덟 살 때는 사형선고를 받고 형 집행 직전까지 갔다가 겨우 강제노동형으로 감형되는 극적인 체험도 했으며, 잦은 간질 발작으로 인해 늘 죽음을 의식하며 살아가야 했다. 이런 삶을 살았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현실보다 더 환상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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