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야구] 스타가 전부는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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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하나: 96년 선동열이 주니치로 이적하자 많은 사람들은 이제 해태의 시대는 끝났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해태는 96, 97 한국시리즈를 연패했다.

사례 둘: 99년 시즌을 끝으로 구도 기미야스는 후쿠오카 팬들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이에를 떠났다. 에이스가 떠난 다이에는 이제 가망이 없다는게 대다수의 중평이었지만 작년 다이에의 성적은 리그 우승이었다.

사례 셋: 올해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놓친 시애틀을 강자로 본 전문가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까지 시애틀은 메이저 30개팀중 최고의 승률을 올리며 사실상 지구 우승을 예약해논 상태다.

위의 사례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이 팀들은 공통적으로 팀의 심장과도 같은 선수들을 잃었다. 그렇기에 이 팀들의 몰락을 예견하는건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딴판이었다. 이 팀들은 이런 상황에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이 위기를 남은 구성원들이 똘똘 뭉치게 만드는 계기로 승화해 냈기에 이런 '이변'을 이뤄낼수 있었던 것이다.

올시즌 일본프로야구에서도 이런 어려운 상황을 극복한 팀들의 약진이 눈에 띈다. 그 대상은 바로 퍼시픽리그의 오릭스와 센트럴리그의 야쿠르트.

이미 시즌 전부터 이 두팀의 몰락은 거의 기정사실화 되어있었다. 먼저 오릭스는 팀 전력의 50%라고까지 일컫는 이치로를 잃은게 치명적으로 보였다. 이치로가 빠진 오릭스는 타선의 중량감이 크게 떨어진건 물론 수비, 주루, 관중수입에 이르는 모든 면에서 약세를 면치 못할것으로 여겨졌다. (실제로 관중 중간집계에 따르면 오릭스는 작년에 비해 관중이 43%나 감소했다.)

야쿠르트역시 작년 스토브리그는 괴로움의 연속이었다. 가와사키와 하카미라고 하는 두 명의 10승대 투수를 동시에 잃었기 때문이다. 여기다 에이스 이시이는 메이저에 정신이 팔려있고, 마무리 다카쓰는 노쇠기미가 역력해 보였다. 따라서 이런 마운드의 약세로 인한 야쿠르트의 고전은 필연적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까지의 결과는 위의 예상을 무색케하고 있다. 16일까지 오릭스는 최근 8연승 포함, 24승 15패 3무로 퍼시픽 1위를 마크하고 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선두 등극이었다. 이치로가 없는 오릭스가 이만큼 해낼수 있었던 배경에는 역시 남은 선수들의 분발이 있었다.

타선에선 다니, 아리아스, 다구치 같은 중심타자들이 나름대로 역할을 해주고 있고, 마운드또한 작년보다 안정된 모습이다. 특히 구대성, 야마구치, 오쿠보가 가세한 불펜진은 작년과는 비교가 안될정도로 두터워져, 오릭스의 뒷심을 살려주고 있다.

야쿠르트 또한 투수력의 공백을 비교적 무난히 극복해내고 있다. 여기엔 기존의 에이스 이시이를 축으로 新외국인투수 뉴만, 올해 새로 선발진에 들어간 후지이, 요미우리에서 온 이리키등의 新전력들의 활약이 있었다. 불펜진도 다카쓰가 제 페이스를 찾고 있고, 이가라시, 이시이, 야마모토 등이 뒤를 받쳐주고 있어 비교적 탄탄한 느낌이다.

투수들의 이런 '예상외의' 선전덕분에 야쿠르트는 가와사키와 하카미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16일까지 팀 방어율 3.23(리그 2위)을 기록하며 19승 16패 2무로 리그 3위에 올라있을수 있었다.

이렇듯 올해 오릭스의 깜짝 1위, 야쿠르트의 거듭된 선전은 (그리고 위의 사례에서 보듯) 야구는 분명 스타선수 몇몇이 있다고 해서 모든게 이루어지는게 아니란걸 일깨워준다. 강팀이 되고나서 비로소 스타가 있는 것이지, 스타가 있어서 강팀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이 팀들은 성적으로 증명해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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