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철호의 시시각각

박근혜의 거침없는 하이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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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철호
논설위원

지난주 야권 원로들의 원탁회의에는 불안과 초조감이 묻어난다. 이들이 “안철수는 돌아설 지점을 지났다”고 압박한 배경에는 박근혜(이하 경칭 생략)의 위력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다. 운동권에서 뼈가 굵은 노련한 인물들이 서둘러 원탁회의를 소집한 시점도 묘하다. 전직 대통령 묘소 참배 등 박근혜의 광폭 행보와 맞물려 있다. 야권 원로들이 삽입한 “낡은 집권세력이 재집권하면 재앙”이란 발표문에는 ‘이대로 가면 필패(必敗)’라는 공포가 느껴진다.

 요즘 박근혜의 거침없는 하이킥이 예사롭지 않다. 그 원천은 탄탄한 지지층의 높은 충성도다. 어쩌면 박근혜는 YS·DJ에 버금가는 강력한 지지기반을 갖춘 마지막 정치인일지 모른다. 박근혜가 어떤 노선을 취하든 웬만해선 지지층이 흔들리지 않는다. 만약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대북 원조를 내건다면 보수진영은 “옛날 운동권 병이 도졌나”라며 반발할 게 분명하다. 하지만 똑같은 표현이 박근혜 입에서 나오면 의심 없이 그냥 믿어준다.

 박근혜가 망설임 없이 복지확대와 경제민주화로 좌클릭하는 것도 이런 자신감의 반영이다. 드디어 개혁 색채의 안대희 전 대법관까지 선거캠프 얼굴로 거침없이 수혈했다. 마치 YS가 이재오·김문수·손학규 등 운동권 거물을 여당에 영입하고, DJ가 386세대의 젊은 피를 대거 수혈하던 장면이 연상된다. 지지층의 눈치를 보는 허약체질의 후보는 엄두조차 내기 어려운 일이다. 부동층 공략과 함께, 박근혜는 ‘불통’ 이미지를 희석시키는 덤까지 얻었다.

 이에 비해 민주당은 연일 헛발질이다. 고(故) 장준하 선생의 유해로 박근혜를 공격한 것은 과녁을 잘못 잡았다. 2007년 5월 12일 신문을 들춰보면 박근혜가 서울 일원동 아파트로 미망인 김희숙 여사를 찾아가 사과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미 ‘절반의 화해’가 이뤄진 사안이다. 민주당이 박정희의 ‘독도 폭파’를 걸고 넘어진 것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의 판정승이라고? 글쎄다. 당시 전체 맥락에서 왜 그런 표현이 등장하는지를 살펴보면 진실은 정반대다. 일본의 집요한 트집을 물리치고 독도를 끝까지 제외시킨 것 자체가 대단한 뚝심이다. 우리 영토가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분명한 의지를 보인 대목이다.

 야권 원로들의 고민에는 안철수를 둘러싼 불안도 한몫하고 있다. 젊은 매니어들 사이에서 안철수 바람은 정치적 실체임이 분명하다. ‘묻지마 지지’의 팬덤 현상까지 나타날 정도다. 하지만 야권 원로들의 정치감각으로는 안철수와 민주당의 짝짓기 이후가 미지수다. 특히 새누리당 성향이면서 안철수이기 때문에 지지하는 수도권 40대의 향배가 의문이다. 안철수에게 민주당 색깔이 덧칠되거나, ‘박경철=경제부총리, 김제동=문화부 장관’ 식의 비난이 나돌면 표심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 응답자의 상당수가 “대선 출마보다 멘토로 머물러 달라”고 할 만큼 안철수 지지층은 비(非)균질적이다.

 안철수 현상이 ‘예능’의 산물이란 점도 야권 원로들의 불안을 자극하고 있다. 예능은 편집을 통해 좋은 장면만 보여준다. 잘못이나 실수는 미리 걸러낸다. 하지만 정치는 보도(報導)가 지배하는 살벌한 공간이다. 잘못이나 실수를 부각해 흔들어대기 일쑤다. 또한 정치 신인에겐 도덕적 검증만큼 정책 검증도 힘겨운 관문이다. 민주당 김두관 후보가 경선 과정에서 무너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안철수가 정치판의 난타전을 견딜 맷집이 있는지, 야권 원로들은 자신하지 못하고 있다.

 새누리당 경선 이후 박근혜는 완전 딴판으로 변신했다. 주변 인물들을 대거 물갈이하고, 청년들을 위해 찢어진 청바지까지 입을 기세다. 반면 안철수는 신비주의를 지키고 있다. 안철수 식의 ‘예능 정치’는 중간중간 불쏘시개가 들어가야 하고, 기존 정치권의 실수에 따른 반사이익도 필요하다. 그동안 안철수는 ‘힐링 캠프’와 책 발간으로 바람을 이어가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남은 불쏘시개는 얼마 없어 보인다. 또한 박근혜는 좀체 실수를 안 하는 스타일이다. 야권 원로들이 앞으로 더 자주 원탁회의를 열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