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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의 선물, 패럴림픽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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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5호 29면

29일부터 다음 달 9일까지 영국 런던에서 제14회 장애인올림픽(패럴림픽)이 열린다. 올림픽은 고대 그리스에서 비롯했지만 패럴림픽은 현대 영국이 기원이다. 패럴림픽은 난민 출신의 척추 전문 의사가 창안했다. 유대계 독일인으로 나치 박해를 피해 1939년 영국으로 망명한 루트비히 구트만(1899~1980)이 주인공이다. 영국 중부 버킹엄주의 스토크 맨더빌 병원이 44년 4월 세계 최초로 척추센터를 설립하면서 초대 센터장으로 초빙됐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척추를 다쳐 휠체어에 의존하게 된 상이군인들의 재활치료를 위한 센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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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트만은 스포츠가 척추손상 환자의 육체적 재활은 물론 정신건강 증진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환자들에게 이를 권했다. 환자들에게 목적 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경쟁을 강조했다. 경쟁은 스포츠 대회로 이어졌다. 구트만은 48년 런던 올림픽 개막일인 6월 28일부터 며칠간 휠체어를 탄 상이군인들끼리 서로 겨루는 대회를 열었다. 제1회 스토크 맨더빌 대회로 불리는 세계 최초의 장애인 스포츠 행사다. 52년 네덜란드 상이군인이 동참하면서 국제대회가 됐다.

그 뒤 매년 열리다 제9회 행사를 60년 올림픽이 열린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었다. 이를 계기로 스토크 맨더빌 대회는 상이군인뿐 아니라 모든 장애인에게 문호를 개방했으며 4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올림픽의 자매행사인 패럴림픽으로 진화했다. 올해 런던 올림픽과 패럴림픽의 쌍둥이 마스코트인 맨더빌과 웬록 가운데 맨더빌은 바로 스토크 맨더빌 병원이 기원이다.
88서울올림픽 직후 개최됐던 제8회 패럴림픽은 새로운 전통을 만든 뜻깊은 대회로 기억된다. 여름올림픽 개최 도시에서, 올림픽 폐막 직후, 올림픽 시설을 그대로 활용해 패럴림픽이 열리는 전통이다. 이로써 올림픽과 패럴림픽은 명실공히 일심동체가 됐다. 그 전에는 1차(로마), 2차(도쿄)를 제외하고는 여름올림픽 개최 도시가 아닌 텔아비브·하이델베르크·토론토·아른헴 등에서 열렸으며 84년에는 스토크 맨더빌과 뉴욕이 나눠서 개최했다.

60년 첫 대회에는 23개국에서 400명이 참가했다. 올해 대회는 165개국, 4200여 명의 선수가 참가해 역대 최고가 될 전망이다. 규모 면에서 10배로 성장했다. 76년부터는 겨울 패럴림픽도 함께 열리고 있다.

올해 6월 24일 스토크 맨더빌 스타디움에서 구트만의 전신 동상이 제막됐다. 69년 스토크 맨더빌 병원 옆에 건립된 장애인 스포츠 스타디움이다. 제1회 스토크 맨더빌 대회가 열린 지 64년 만이고, 제1회 패럴림픽이 열린 지 52년 만이다. 이번에 함께 제작된 그의 흉상은 매번 패럴림픽이 열리는 도시마다 옮겨 다니며 전시될 예정이다.
올해 8월 영국은 구트만의 생애를 조명한 ‘베스트 오브 멘’이라는 TV영화를 제작해 BBC2 채널에서 방영했다. 나치 박해를 피해 독일을 탈출한 유대인 난민에게 영국은 기꺼이 망명처를 제공했고, 이 난민은 새로운 조국에 장애인 스포츠 대회라는 희망의 선물을 줬다. 이제 전 세계가 그의 선물을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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