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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대입 논술 부담 확 줄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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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본지의 ‘대입 논술이 너무해’ 시리즈 기사에 소개된 논술 문제들은 이를 출제한 우리 대학의 수준을 의심케 한다. 문법적으로 맞지도 않는 번역문, 석·박사 전공자도 무슨 말인지 쉽게 이해하기 힘든 학술 논문의 글을 뽑아 놓고 수험생에게 문제를 풀라고 한다. 서울대 등 10개 대학이 자연계 수험생에게 낸 수리 논술 문항 중 절반 이상이 대학 교육과정에서 나왔다고 한다. 우리 대학들은 어렵게 출제해야 격(格)이 높아진다고 믿고 있는 듯하다.

 이명박 정부가 대학에 입시 자율권을 부여한 이유는 대학이 교육 목표·학교 특성에 맞는 학생을 알아서 뽑으라는 것이지 비문(非文) 투성이에다 해독 불가능한 논술 문제를 내 고교 교육을 흔들라고 한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돌아가고 있다. 공교육 교사들은 논술 지도를 할 수 없다면서 손을 놓고 있고, 사교육 시장은 그 틈을 노려 “논술로 대학 간다”며 활개를 치고 있다. 대입이 고교 교육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인식만 있었어도 우리 대학들이 이런 상식 밖의 출제 행태를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의 대학은 어떤 인재를 뽑겠다는 철학도 빈곤하고, 공교육 정상화라는 책무성도 상실한 수준이다.

 대학이 논술로 학생을 뽑겠다면 우선 고교 교육과정에 대한 이해부터 갖춰야 한다. 출제위원이라면 최소한 고교 교과서라도 한 번 보고 출제해야 하지 않겠나. “대학 수학은 대학에 와서 배워야지 왜 고교에서 배우게 하느냐”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지적은 타당하다. 또한 논술 출제 지문을 구하기가 어려워 영어 원문 등 원서에서 인용하려면 용어 설명을 덧붙여줘야 기본 아닌가. 논술 문제가 논리력을 측정하자는 건지, 독해 능력을 보겠다는 건지 분간이 안 간다면 이는 상식 밖의 출제라고 할 수 있다.

 대학이 이런 상식 밖의 출제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고교와의 연계를 강화하는 데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우선 고교 교사들의 목소리부터 들으라는 얘기다. 수능시험에서 대학교수 일색이었던 수능 출제 및 검토위원단에 고교 교사들이 들어가자 들쭉날쭉했던 수능 난이도가 적정하게 유지된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이를 위해 대학이 고교 교사들과 만나 대화할 수 있는 협의체를 운영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수험생들이 제한된 시간에 최다 10개의 생경한 지문을 읽어내며 문제를 풀어야 한다면 이들은 결국 사교육 시장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대학들이 논술 부담을 줄여주려면 제시문과 논제의 숫자, 답안 작성 시간 등이 적정한지도 검토해 봐야 한다. 모의고사를 여러 차례 실시해 학생들이 어느 정도 부담을 느끼는지 점검하고, 논술 문제뿐 아니라 문제 해설도 상세하게 공개하는 것도 필요하다.

 대학이 자율이라는 권리를 향유하기 위해서는 이에 걸맞은 책임의식을 갖춰야 한다. 과거처럼 정부가 일일이 간섭하는 시절로 되돌아가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대학 스스로 수험생들의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게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