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성 없어도 금품 받으면 처벌 ‘김영란 법’ 이르면 2014년 시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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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이 돈을 받으면 대가성이 있든 없든 처벌하는 법이 22일 입법예고된다. 관행으로 자리 잡은 ‘스폰서’나 ‘떡값’을 근절하자는 취지의 법안이다.

 국민권익위원회는 16일 이 같은 내용의 ‘부정청탁 금지 및 이해충돌 방지 법안’을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김영란 위원장은 “당장은 대가성이 없지만 장차 뭔가 도움을 받을 일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금품이나 향응을 주고받았다면 처벌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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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안에 따르면 100만원이 넘는 금품·향응을 받은 공직자는 대가성이 없더라도 3년 이하의 징역이나 수수한 금품의 5배에 해당하는 벌금에 처해진다. 3만원(공무원 행동강령의 접대 상한선) 초과 100만원 이하 금품이라면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대가성을 확인해야 처벌하는 형법의 뇌물죄보다 강력한 규정이다.

 행정부처·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은 물론 국회의원·검사·판사·공공기관 직원에서 교사까지 모든 공직자가 대상이다. 가족이 금품을 받았고 공직자도 그 사실을 알았다면 역시 똑같이 처벌받는다. 대신 가족·친척·친구 등 오랜 친분이 있는 사이끼리 오간 경조사비나 치료비 등은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 김 위원장은 “청탁을 하지 말자는 캠페인용 같은 법, 청탁 받은 공무원에게 거절할 수 있는 명분을 주자는 법”이라고도 했다. 법안은 또 다른 사람을 통하거나 공직자끼리 부당한 청탁을 하는 경우에도 과태료를 물리도록 했다. 공정하게 업무를 할 수 없도록 위법한 일을 부탁하거나 직위·권한을 내세워 청탁한다면 모두 불법으로 규정했다. 특히 공직자 사이의 청탁에 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조항도 담겨 있다. 또 공직자가 자신이나 가족의 이익이 걸린 업무를 할 수 없도록 했고, 차관급 이상 고위 공직자라면 가족을 소속 기관에 채용할 수 없도록 했다.

 권익위는 연내 국회에 법안을 제출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통과 가능성이 확실하지는 않은 상태다. 김영란 위원장이 주도한다고 해 ‘김영란 법’으로 불리는 이 법은 입법예고 절차까지 오는 데도 1년 넘게 걸렸다. 지난해 6월 14일 국무회의에서 다른 국무위원들의 반대에 부닥쳐 ▶부정 청탁 처벌 강도를 형벌에서 과태료로 낮추고 ▶청탁 받으면 무조건 신고해야 하는 규정을 ‘우선 거절하고 반복될 때 신고’하는 식으로 일부 수정했다. 법이 공포되더라도 처벌 규정은 2년 뒤(이르면 2014년 말)부터 시행하도록 유예기간도 뒀다.

 하지만 공직사회와 국회 등의 ‘은밀한’ 저항은 여전하다. 형법, 국가공무원법, 공직자윤리법, 공무원 행동강령 등 기존 규정을 수정·보완하면 충분하다는 주장이다. 박계옥 권익위 부패방지국장은 “법무부에선 형법 개정 사항이지 별도의 법으로 할 사안이 아니라고 한다”고 말했다.

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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