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다섯 … 시간은 사랑으로 압축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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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중혁이 3시를 가리키고 있는 시계 앞에 섰다. 모두 잠든 새벽 3시는 소설 ‘요요’의 주인공인 차선재가 가장 좋아한 시간이다. 왜 3시냐고 묻자 작가는 “아무 의미 없다. 시침과 분침이 90도인 저 모양이 예쁘지 않냐”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중혁(41)이 사랑 이야기를 쓴다. 그것은 어떤 빛깔이고 어떤 질감일까. 줄곧 기발한 상상력으로 현대 문명의 모순을 건드렸던 작가에게 사랑은 중요한 이슈가 아니었다. 황순원 문학상 본심 후보에 오른 ‘요요’는 김중혁의 변화가 엿보이는 작품이다. 그가 처음 쓴 사람 체온에 가까운 사랑 이야기이자 시간에 대한 소설이기 때문이다.

 지난 달 25일 만난 김중혁은 “사랑 이야기는 워낙 잘 쓰는 작가가 많았다. 그래서 내 방식대로 쓸 수 있는 순간을 기다렸다. 꼭 사랑 이야기라기 보다는 두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면서 겹쳐지고 어긋나는 시간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했다.

 작가는 시계공인 차선재의 쉰 다섯해의 생을 시간 순으로 훑는다. 부모의 이혼, 왕따 등 항상 관계를 부수며 살아온 선재가 유일하게 안락을 취했던 것은 시계였다. 그는 신새벽 책상에 앉아 기계식 시계를 해체하고 조립하면서 완벽한 세계를 발견한다. 대학에 들어가 열병 같은 첫사랑에 빠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내 옆에 누군가 있고, 그 짧은 순간이 흘러가지만 당시에는 그 의미를 잘 모르잖아요. 먼 훗날 내 생애를 객관적으로 돌아봤을 때 그 짧은 순간이 어떤 의미였는지 쓰고 싶었던 것 같아요.”

 차선재가 사랑에 빠지는 장면은 유독 시간이 느리게 간다. 예를 들면 여자와 공원을 걷는 장면이다. 김중혁의 소설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따뜻한 문장이다.

 ‘나무들의 표면과 신발에 닿는 작은 돌멩이들의 감촉과 풀향기와 어스름한 저녁의 빛깔과 채도를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원을 둘러싼 하나하나의 요소들이 차선재의 살갗에 박혀서 피부가 되었다.’

 그에게 이 문장을 언급하자 ‘시간의 편집’을 이야기했다. “왜 우리가 정말 좋았던 시간은 디테일하게 추억하고, 정말 싫었던 순간, 예를 들면 군대 시절, 그런 시간은 뭉텅이로 버려버리잖아요.”(웃음)

 아닌게 아니라, 작가는 선재가 첫사랑을 만났던 스무 살, 사라졌던 여자에게 다시 연락이 왔던 서른 여섯, 뒤늦게 재회하게 된 쉰 다섯의 그 짧지만 강렬한 순간을 24쪽에 압축했다. 차선재의 일대기이지만, 그가 사랑했던 나날을 중심으로 재편집한 셈이다.

 “소설을 쓰면서 기술적으로 시간을 어떻게 처리할지 많이 고민하게 됩니다. 과거로 돌아갈까, 그냥 이어서 갈까, 아니면 미래로 넘어갈까 선택의 순간이 많죠. ‘요요’는 소설 속에서 어떻게 시간을 컨트롤 할 수 있을까 실험한 작품이기도 해요.”

 선재의 시간은 그가 창조한 시계로 대변된다. 제목인 ‘요요’는 선재가 여자와 30여 년만에 재회한 뒤 만든 시계의 이름이다. 직선으로 흐르지만 결국 다시 돌아오고야 마는 ‘요요’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지만 선재는 그 시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김중혁은 “시간에 대해 고민 하던 중에 안개속에서 요요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내가 찾던 단어가 이거였구나 싶었다”고 했다.

 허윤진 예심위원은 “단순히 어떤 문화를 소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창작품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김중혁이 ‘크리에이터’ ‘메이커’로 도약했다고 볼 수 있다”고 평했다.

◆김중혁=1971년 경북 김천 출생. 2000년 『문학과 사회』에 단편 ‘펭귄뉴스’를 발표하며 등단. 김유정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등 수상. 소설집 『펭귄뉴스』『악기들의 도서관』, 장편소설『미스터 모노레일』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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