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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인 프로포폴 오남용 얼마나 심각하길래…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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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잘나가던 서울 강남 소재 성형외과 의사 A씨. 그는 프로포폴에 중독돼 마약·알코올 중독 전문 치료병원을 들락거리는 처지가 됐다. 의사면허도 정지됐다. 2008년 불면증과 외로움으로 프로포폴에 손을 댄 것이 화근이었다.

프로포폴 의존성 때문에 생명까지 잃을 뻔한 적도 여러 번이다. 한 번은 약에 취한 상태로 직접 하루에 30여병씩 주사를 놓다가 지혈이 안 된 상태로 잠들어 방이 피바다가 된 적도 있다. 약기운에 그대로 불이 켜진 향초에 얼굴을 박고 쓰러져 안면에 3도 화상을 입기도 했다.

의료인은 상대적으로 프로포폴 같은 수면마취제에 대한 접근이 쉽다. 오남용 위험이 높은 것이다. 드물지만 일부 의료진이 환각효과나 기분전환을 위해 상습 투여하는 것으로 보고된다. 프로포폴 부작용에 따른 사망자의 대부분도 병원에 근무하는 의료인이다.

최근 H산부인과에서 발생한 수면마취제 사망사건으로 의료진의 프로포폴 오남용 문제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마취과 등 의료인 1% 남용 위험

프로포폴, 미다졸람은 많이 사용하는 수면마취제다. 특히 우유주사로도 불리는 프로포폴은 수면에 이르는 반응 시간이 1~2분으로 짧다. 회복이 빨라 전신마취뿐 아니라 전신마취가 필요 없는 간단한 수술이나 내시경 검사를 할 때 많이 사용한다. 성형외과 개인병원의 80% 이상이 수면마취제로 프로포폴을 사용한다.

문제는 의존성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청 마약류관리과 관계자는 “중독성은 없지만 마약처럼 기분이 좋은 환각 효과를 나타내 계속 투약하게 되는 의존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식약청은 2011년 2월 프로포폴을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했다.

의료진은 프로포폴 같은 향정신성의약품에 대한 접근이 쉽다. 프로포폴도 마찬가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는 “2000년부터 2011년까지 프로포폴과 관련된 사망사례 36건을 분석한 결과 의료행위 중 사망사고는 16건 이었다”며 “나머지 20건은 의사·간호사 등 병원 관계자가 약물에 의존해 과다 투여해 사망하거나 자살에 이용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해외에선 마취과에서 근무하는 사람의 약물 남용빈도는 약 1%로 보고된다. 국내 관련 통계는 없지만 이와 비슷할 것으로 추측한다.

특히 한국은 유럽·미국과 달리 1차 의료기관에서 독립적으로 수술이 가능해 프로포롤 같은 수면마취제를 많이 사용한다. 때문에 수면마취제의 오남용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프로포폴 향정신성 지정 후에도 큰 변화 없어”

프로포폴이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된 후 판매량에는 변화가 있을까.

큰 변화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프로포폴을 생산하고 있는 제약사 관계자는 "구체적인 생산량은 확인해줄 수는 없지만 프로포폴 생산과 관련해 큰 변화는 없다"고 말했다.

식약청에 따르면 국내 프로포폴 생산 규모는 2011년 기준 약 170억 원이다. 국내에선 동국제약 등 제약사 십여 곳에서 생산·수입하고 있다.

연도별 국내 프로포폴 생산액은 2009년 173억 원, 2010년 131억 원,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된 2011년에는 170억 원이다. 다만 2010년도 생산이 줄어든 것은 당시 국내에서 프로포폴과 관련 향정신성의약품 지정 등 논란이 확대되면서 다소 줄어든 것으로 추측된다.

“드러난 오남용 실태 빙산의 일각”

식약청에 따르면 의료인 중 일부는 프로포폴에 중독됐다. 식약청 2010년 102개 병원 마취과 의료진을 대상으로 프로포폴 사용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72개 병원 중 6개 병원에서 의료종사자 등 8명의 프로포폴 중독자가 확인됐다. 이 중 2명은 사망했다.

같은 해 수술실에서 근무하는 의료진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마취과학회 회원 7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 7개 병원에서 9명의 프로포폴 남용자가 확인됐다.

남용자는 마취통증의학과 전공의 4명, 마취통증의학과 근무 간호사 1명, 타과 전공의 2명, 무응답 2명이었다. 직업이 확인된 이들은 모두 대형병원인 3차 의료기관에서 근무했다. 현장에서 프로포폴을 투약하다가 발견돼 병원에 알려졌다. 이후 1년 내 병원을 떠났다.

서울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안원식 교수는 “프로포폴 남용자 빈도는 설문조사결과보다 더 높을 것”이라며 “동료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밝히지 않은 사례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식약청은 프로포폴의 오남용 문제가 대두되자 2011년 2월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해 관리했다. 병․의원은 프로포폴을 사용·보관할 때 사용량과 재고량을 철저히 기록해야 한다. 의약품을 보관할 때는 일반의약품과 분리해 별도로 보관하고 잠금장치를 해야 한다. 약이 변질되거나 부패했을 때도 보고하고 폐기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마약관리법 위반이다.

하지만 항정신성의약품 지정 후에도 프로포폴이 유출되고 있다. 사용하고 남은 것을 빼돌리는 방식이다. 지난 5월 식약청에서 병의원 프로포폴 관리 실태를 점검한 결과, 13개 병·의원에서 15건의 관리 위반 사례가 적발됐다. 지난해 12월에는 17곳에서 관리 부실 사례가 발견됐다.

“기분전환으로 상습 투여하면 사망위험만 높아져”

수면마취제는 안전할까. 호흡곤란, 심장기능 저하 등 치명적인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도상환 교수(대한마취약리학회 전 회장)는 “특히 기분전환 등 진료 이외의 목적으로 사용하면 약물 의존성이 높아져 이 위험은 더 커진다”고 강조했다.

수면마취제의 정확한 의학용어는 진정·최면제다. 모두 정맥에 주사 투여한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은 미다졸람과 프로포폴이다. 프로포폴은 세계적인 가수 마이클잭슨의 사망 원인으로 밝혀지며 주목받았다. 최근에는 덱스메데토미딘이 출시됐다. 모두 진정·최면제를 만드는 성분의 이름이다. 각 성분에 따라 5, 6가지의 제품이 나온다.

미다졸람과 프로포폴은 용량을 늘리면 점진적으로 진정·수면·마취 효과를 나타낸다. 수면내시경을 할 때 투여한다. 수술을 앞두고 환자가 불안해하면 진정·수면 효과를 보기 위해 사용한다. 중환자에게 안정적으로 인공호흡기를 사용해야 할 때도 쓴다. 수술을 할 땐 투여 용량을 늘려 마취를 유도한다.

특히 미다졸람과 프로포폴은 뇌 같은 중추신경계에 작용하기 때문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도상환 교수는 “호흡 기능과 심장 기능의 저하가 나타난다. 혈압이 10~20% 내려가고 호흡이 약해진다”며 “많은 용량을 사용하면 더 심해진다. 노인이거나 수면무호흡증, 비만, 천식 같은 호흡기질환이 있으면 투약 후 면밀한 관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도 교수는 이어 “특히 기분전환의 목적으로 상습 투약하면 의존성이 높아지고 부작용에 따른 사망 위험만 높아진다”고 덧붙였다.

수면마취제의 사망위험을 줄이려면 의료기관과 환자 모두 주의가 필요하다. 도상환 교수는 “의료기관은 무호흡증·저혈압 등이 발생했을 때 즉시 발견해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산소포화도측정기·산소투입기·기도확보기를 구비해야 한다”며 “환자는 과거 진정·최면제를 투여 받았을 때 과민반응을 보인 적이 있거나 달걀 노른자·콩류 식품에 과민반응이 있으면 의료진에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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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운하ㆍ권선미 기자 unha@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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