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범 그물망 촘촘해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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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금융감독원의 모 간부는 지급불능 상태에 빠진 S금고 대표를 은밀히 소환했다. 그러나 깜깜 무소식이었다.

"밤중이라도 좋으니 편한 시간에 오라" 며 시간적 여유를 주면서 몇차례 더 불렀지만 반응이 전혀 없었다. 확인해보니 S금고 대표는 그새 해외로 도망간 뒤였다.

"정말 기가막혔다. 대표가 도피하는 바람에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며 이 간부는 혀를 찼다.

S금고는 6개월 영업정지를 받았으나 핵심 인물에 대한 조사를 하지 못해 더 이상 부실 책임을 추궁할 수 없었다.

◇ 조사 낌새 채면 해외로=1999년 1월 금감원이 설립된 지 2년여 동안 적발된 금융사고 피해액은 모두 4천5백61억원.

금감원은 범죄를 저지른 경제사범에 대한 처벌도 약하지만, 더 큰 문제는 관련자의 해외도피를 사전에 막을 장치가 없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S금고 사례처럼 금융사고나 부실기업 관련자들은 금융당국에서 내사를 벌인다는 낌새를 채면 바로 해외로 도망친다.

특히 지난해 대형 금융사건에 연루돼 해외로 도피한 경제사범이 많았다.

'정현준게이트' 의 동방금고 유조웅 사장과 신양팩토링 오기준 사장, 금고업계 불법대출로는 최대규모(2천5백억원)의 사건을 일으킨 동아금고의 김동원 회장, 수백억원의 고객 돈을 빼돌린 부산 청구파이낸스 김석인 사장 등이 대표적이다.

이 때문에 금감원은 내사 과정에서 관련자의 출국금지를 금감위원장 명의로 요청할 수 있도록 규정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정식 조사에 들어가기도 전에 핵심 인물들이 도망가는 바람에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며 "이번 금감원 요청이 명문화되면 부실기업뿐만 아니라 은행법.증권거래법 등 금융관련법을 위반한 금융기관 관련자까지 확대할 수 있어 보다 확실하게 금융사고를 방지할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 인권침해 논란=경제사범에 대해 단호한 조치를 취하자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한 변호사는 "아무리 경제사범이지만 신체의 자유는 고려해야 하지 않느냐" 고 주장했다.

경실련 고계현 정책실장도 "편의적으로 출국금지를 남발하면 개인들의 피해가 크다" 며 "사법당국의 수사 의지만 확고하면 해외도피자 수사도 가능할 것" 이라고 주장했다.

정선구 기자 sun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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