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에이스도 없는데…" 女핸드볼 '발기술' 눈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제 유럽에 안 된다’ ‘에이스도 없는데’

지난달 28일 스페인과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이겼지만, 여자 핸드볼 대표팀은 악재를 만났다. 에이스 김온아(24)의 부상. 경기 막판 상대 선수와 부딪히며 넘어진 김온아는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지 못했다. 대회 끝날 때까지 출장이 불투명했다. 안 그래도 높은 유럽의 벽. 모든 전략의 중심이었던 김온아가 빠지며 비관론도 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 핸드볼 대표팀은 4강까지 거침없이 행진했다. 8강에서 만난 우승후보 러시아를 꺾고 10일 준결승을 준비 중이다. 1984 LA올림픽부터 메달만 6개(금2 은3 동1) 딴 저력은 여전하다. 올림픽에만 나가면 물 만난 물고기가 되는 비결은 뭘까. 수수께끼같은 여자 핸드볼의 비밀을 풀어봤다.

Q: 여자 핸드볼엔 ‘올림픽 DNA’가 있다?

어느 정도는 정답이다. 단일 종목 최대 대회인 세계핸드볼선수권대회에서보다 한국은 올림픽에서 훨씬 강하다. 100% 전력으로 참가한 것은 아니었지만, 한국은 지난해 12월 브라질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서 11위에 머물렀다. 세계 랭킹도 8위다.

우선 세계선수권에 비해 유럽팁이 적다. 핸드볼에선 유럽이 초 강세다.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승부가 결정될 만큼 서로 실력도 비등하다. 총 24개국이 출전하는 세계선수권엔 유럽팀이 15~16개 정도 된다. 경기 일정도 빡빡해 체력이 떨어지는 대회 후반으로 갈수록 유럽팀을 상대하는 게 버거워진다. 그러나 올림픽은 대륙별 출전 티켓이 제한돼 있다. 이번 대회 유럽국가는 개최국 영국을 포함해 총 9개국. 전체 참가국도 12개 국으로 경기 일정에도 여유가 있다.

또 하나의 비결이 있다. 한국 특유의 플레이 덕분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좋은 발 스텝 기술을 갖고 있다. 그래서 경기 진행이 매우 빠르다. 수비를 속이는 페인팅 또한 탁월하다.서로 비슷한 스타일의 유럽팀들끼리 늘 경기를 하다, 한국팀을 만나면 당황할 수밖에 없다. 한국 핸드볼은 리드미컬한 플레이로 런던에서도 인기가 좋다.

한국은 수비 형태도 다양하다. 3가지 정도의 전략을 두고, 상황에 따라 적절히 활용한다. 그러나 유럽팀은 수비 형태가 단순하다. 경기를 보면 유럽팀은 6명 모두 6m라인에 늘어서 수비를 하는 게 대부분이다. 익숙지 않은 수비 형태에 당황한 유럽 선수들은 무리한 공격을 하다 오펜스 파울을 범하기도 한다. 유럽팀이 한국을 가장 껄끄러워 하는 이유다.

Q: 에이스도 없는데 왜 이리 잘해?

대표팀 에이스이 김온아가 부상당했을 때, 강 감독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도 그럴 것이 김온아를 중심으로 세트 플레이 등 전략을 짜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온아 없이 치른 나머지 경기에서도 한국은 선전했다. 조 2위(3승 1무 1패)로 조별리그를 통과한 뒤 단 숨에 4강에 올랐다.

위기의식이 선수들의 집중력을 높였다. ‘이제 안 돼’가 아니라 ‘어떻게든 해 보자’는 생각이 선수들의 조직력을 배가 시켰다. 수 년을 함께 고생했는데도 부상으로 주저앉은 김온아를 위해서도 더 열심히 뛰었다. 윤성원 체육과학연구원 박사는 “조직력 측면에선 오히려 더 좋아졌다”고 평했다.

정지해(27), 이은비(22) 등 김온아를 대신한 선수들도 훌륭했다. 그동안 김온아의 그늘에 가렸지만, 사실 이들도 정상급 선수들이다. 정지해는 지난 봄 SK코리아핸드볼 리그 최초로 400골을 달성했다. 수 차례 리그 MVP도 받았다. 이은비는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 최우수 선수 출신이다. 윤 박사는 “스텝이나 페인팅에선 이은비가 세계 최고”라고 평했다.

손애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