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재산보고 결혼한男, 병원개업 무산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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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사랑과 전쟁 2’는 시청자가 보내준 사연을 한 편의 드라마로 빚어낸다. 매주 20~50여 개의 사연이 인터넷은 물론 전화, 편지로 들어온다. [사진 KBS]

아내가 남편 몰래 딴주머니를 찼다. 여자에겐 비자금이 있어야 한다는 친정 엄마의 가르침을 철석 같이 믿었다. 그러나 하나, 둘 남편에게 들키기 시작한다. 서로에 대한 믿음을 잃어가는 부부는 파경을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35회 ‘비자금을 찾아라’)

 이번에는 거짓말이 문제다. 스펙(조건)을 속이고 결혼한 아내는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다. 학력도, 직장도, 연애 경험도 모두 숨기고 웨딩마치를 울려서다. 바람둥이 남편은 아내에게만 ‘순결’을 요구하며 상처를 준다. (36회 ‘아내는 순정녀’)

 매주 금요일 밤 벌어지는 ‘전쟁’ 이야기다. 9년여 방영된 시즌1(1999년 10월~2009년 4월)이 끝난 후, 지난해 11월 새롭게 단장한 ‘부부클리닉-사랑과 전쟁2’(KBS)가 여전히 인기다. 시청률은 8%대로 동시간대 방영되는 ‘고현정쇼’(SBS)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고 있지만, 공감도 면에서는 압도적이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한 회도 빼놓지 않는다. 1주일 스트레스를 ‘사랑과 전쟁’으로 날린다”는 글이, 주부들이 모이는 온라인 카페에는 “옛날에는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결혼한 후 보니 공감되는 부분이 많다”는 반응이 올라온다. 매회 시청자 사연을 토대로 하다 보니 현실감이 뛰어나다.

 ‘시즌1’과 달라진 점은 극중 부부가 찾는 곳이 법정에서 클리닉으로 바뀌었다는 것. 박효규 CP는 “‘시즌1’이 단순히 이혼하느냐 마느냐를 물었다면, 이번에는 변호사·성의학상담가 등으로 구성된 솔루션위원회가 해결책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솔루션위원회의 해법은 매회 다르다. “서로 장점을 보듬어 안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는 권유도 하고 “서로 위자료 주고받는 것 없이 이혼하기를 권한다”는 식의 직설도 서슴지 않는다. 프로그램의 외양만 바뀐 게 아니다. 부부 풍속도도 달라졌다.

 ◆시작은 돈, 끝은 외도=장기불황 시대, 팍팍한 살림살이가 요즘 부부갈등의 핵심 요인이다. 돈 문제로 갈등을 겪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박 CP는 “예전에는 외도 문제가 주류였다면, 요즘 들어오는 사연에는 유산·혼수 등 금전 갈등이 많다. 시쳇말로 조건만 보고 결혼해 파경을 맞은 경우가 늘었다”고 말했다.

 유산을 물려받은 아내의 재산을 어떻게든 차지하려는 시댁 식구들, 친정을 돕기 위해 각자 재산관리를 선언한 아내, 남편의 돈을 함부로 쓰는 시누이에 대한 증오에서 촉발된 싸움 등이 드라마로 빚어졌다. 지금까지 방송된 36회 중 직·간접적으로 돈 문제가 개입된 갈등이 절반 가까운 17회에 달한다. 돈 문제에서 시작된 갈등이 외도로 이어지면 파경을 막기는 더 힘들어진다. 2012년 우리 사회 부부들의 민낯이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 이젠 옛말이다.

 ◆힘센 장모, 약한 사위=고부갈등이 예전 부부싸움의 주요 원인이었다면, 요즘에는 장모와 사위의 대결구도가 많다. 박 CP는 “시어머니는 더 이상 핫한(뜨거운) 트렌드가 아니다. 요즘은 장모와 사위 간 갈등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제보가 잇따르고 있다”고 했다. 친정과 더 가까운 관계를 지속하는 여성들이 늘어나서다. 가족 중대사 결정권을 남편보다 부인이 쥐고 있는 경우, 당연히 장모의 힘이 커진다.

 그래서일까. 거의 매회 장모와 사위가 다투는 모습이 감초처럼 들어간다. 사돈이 대등한 위치에서 싸우는 모습도 쉽지 않게 볼 수 있다. 솔루션위원회 위원으로 출연 중인 백혜경 ‘강동우 성의학연구소’ 공동원장(신경정신과 전문의)은 “핵가족화, 서구화가 급속화되며 가족 자체가 부계사회에서 모계사회로 변화하는 양상이다. 여성의 경제력이 커지며 장모의 입김도 세졌다. 하지만 장모도 제3자라는 점에서 시어머니의 개입만큼 좋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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