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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유기업 흔든 원자바오 퇴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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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원자바오

중국 공산당 원로 및 보수학자 등 1644명이 경제 개혁을 이끌어온 원자바오(溫家寶) 총리 파면을 요구하고 나섰다. 미국에 서버를 둔 인터넷매체 둬웨이(多維)는 지난달 15일 작성된 ‘국유기업 훼손 저지를 위한 호소문’ 전문을 최근 공개했다.

마빈(馬賓) 전 국무원 경제기술사회발전연구센터 고문이 대표 작성한 서한은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을 비롯한 고위급 공산당원들과 당 정치국 상무위원회, 당 중앙위원회 등으로 보내졌다. 서명자 중에는 친중다(秦仲達) 제13대 공산당 중앙위원, 장친더(張勤德) 공산당 중앙정책연구실 국장, 류중허우(劉仲侯) 장쑤(江蘇)성 정법위원회 서기 등도 포함돼 있어 파장이 예상된다.

 서한은 “사회주의 제도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근본 제도다. 특정인이나 단체가 기본 개념을 훼손시켜서는 안 된다”며 원자바오를 국가경제의 근본을 흔들고 있는 장본인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원 총리가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자 국무원 총리로서 지난 10년 동안 주도해온 정책들이 “헌법에 위배되고 국가의 기본 원칙을 전복시켰다”며 비난했다.

 ‘2030년 중국’과 ‘신(新) 36조 시행세칙’이 대표적이다. 중국 국무원은 2월 말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 총재 방중 시 ‘2030년 중국:현대적이며 조화롭고 창조적인 고수입 사회 건설’ 보고서를 통해 중국의 방대한 독점적 국유기업을 민영화해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원 총리는 같은 달 국무원 간담회에서 민간의 공공기반시설 투자 확대를 유도하기 위해 금융 에너지 등 22개 분야의 진입장벽을 대폭 완화하는 신 36조 시행세칙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들은 전체 국가 경영자산 중 공유자산의 비중이 2003년 57%에서 2010년 27%로 급감했다며 “민영화의 폐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경제·정치·사회 분야의 잘못도 조목조목 짚었다. 원 총리가 “미국을 구하는 것이 곧 중국을 구하는 것”이라며 올 초 외환보유액 1만1789억 달러를 털어 미 국채를 구입한 것이나 미국과 함께 유전자변형 기술에 200억 위안이나 투자한 사례를 나열했다. 또 그가 평소에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좋아해 200번도 넘게 읽었다고 스스로 밝힌 것처럼 사상적으로 마르크스나 마오쩌둥(毛澤東)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언행에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원 총리가 4월 마오쩌둥 깃발, 유토피아, 홍색중국, 둥팡훙(東方紅) 등 사이트를 폐쇄하는 등 개인의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인민의 언론 자유를 침해했다고 밝혔다.

 2010년 8월 선전(深) 강의 때 했던 “경제개혁뿐 아니라 정치개혁도 필요하다. 정치개혁에 대한 보장이 없다면 현대화 건설 목표는 실현 불가능할 것”이라는 발언도 문제 삼았다. 2003년 486만 건이던 치안 관련 범죄가 2010년 1212만 건으로 2.5배나 늘었다며 공격하기도 했다.

 베이징 정가는 권력 교체가 이뤄질 제18대 당 대회를 앞두고 베이다이허(北戴河)에서 차기 지도부 구성을 논의하고 있는 가운데 원 총리 파면 촉구 서한이 공개됐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공산당 일당 체제가 아닌 서구식 자본주의와 다당제를 바탕에 둔 개혁을 주장해온 원 총리를 눈엣가시로 여기는 이들도 적지 않은 탓이다. 이런 가운데 원 총리가 베이다이허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중국 경제의 향방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민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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