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경제 르포] 중국 경제, 통계보다 실물이 더 나쁘다는데 … 상하이·원저우 가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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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상하이의 한 건설 현장에서 노동자가 작업을 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부동산 가격 억제 정책으로 각 은행이 이분야 자금줄을 죄자 건설시장 역시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상하이 AP=연합뉴스]

“사업을 한 지 20년인데, 이렇게 힘든 건 처음이다.”

 중국 저장(浙江)성 원저우(溫州)에서 제화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황셴양(黃顯陽) 사장은 “2008년 금융위기 때에는 유럽시장이라도 살아있었지만 지금은 미국과 유럽이 모두 죽었다”며 “사업하기가 2008년보다 훨씬 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임금과 원재료 가격이 20% 안팎 올라 경영 압박이 심하다”며 “특히 수출에 의존하는 민영기업이 한계상황으로 몰리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올 상반기 원저우의 3998개 대형 제조업체 중 140개 업체가 파산했고, 절반 이상 업체가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다(원저우시 통계).

 상하이에서 굴착기 관련 부품업체를 경영하고 있는 이창호 사장은 “올해 중국의 중장비 업황이 지난해의 절반 수준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싼이(三一)·히타치 등 중국 중장비 업체들의 올 상반기 영업실적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70% 줄어들었다”며 “투자가 줄고, 은행이 창구를 막으니 굴착기가 팔릴 리 없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HSBC가 집계하는 중국 구매관리자지수(PMI)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난 7월 HSBC의 PMI는 49.3을 기록해 9개월 연속 정상치인 50 이하에 머물렀다. 그만큼 제조업 경기가 위축되고 있다는 얘기다.

 소비도 전염되고 있다. 상하이의 고급 상가인 쉬자후이(徐家匯)의 강후이(港匯)백화점 지하 1층 패션가는 토요일 오후임에도 한산했다. 매장을 운영하는 리샹쥔(李向軍)은 ‘올 상반기 수익이 20% 정도 줄었다”고 말했다. 중국의 올 소비판매 증가율은 11.2%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4%포인트가 낮아졌다. 인터넷에서는 중국 경기 불황을 묘사하는 ‘32자 불황가(歌)’가 흘러다닐 정도다. <표 참조>

 전문가들은 실제 경기가 통계보다 더 나빠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중국의 올 상반기 경제성장률은 7.8%였다. 그러나 실물경제 상황을 직접 반영하는 전력 사용 증가율은 5.5%에 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7%포인트가 떨어진 수준이다. KOTRA 중국팀의 박한진 부장은 “매년 전력 부족에 시달리던 중국에서 올해는 ‘제한 송전’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런 불황은 언제나 끝이 날까. 왕렁이(王<6CE0>一) 상하이사회과학원 박사는 “내년 3월 국무원(정부)의 새 지도부가 등장하기까지는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내놓기 힘들 것”이라고 말한다. 올가을 예정된 당 대회를 앞두고 권력 새 판 짜기에 나선 중국이 강력한 부양 정책을 추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는 최근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인민은행(중앙은행) 지점장회의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중앙은행은 하반기 통화관리 정책으로 ‘안정적 통화정책 및 미세 조정’을 하달했다. 경기 급랭을 막는 수준에서 통화정책을 운용할 것이라는 얘기다. 유명 경제분석가인 앤디 시에는 “정부의 경기부양은 막힌 곳을 뚫어주는 수준의 파인튜닝(fine tuning·미세조정) 수준”이라며 “4조 위안(약 700조원) 규모의 부양책을 실시했던 2008년과 같은 상황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에 기대할 게 별로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렇다고 중국 경제가 급속하게 냉각돼 경착륙 위기에 빠질 것으로 전망하는 전문가들은 별로 없다. 올 들어 두 차례 단행된 금리 인하 및 일부 건설 프로젝트의 재개 등 부양책이 하반기에 그런대로 효과를 발할 것이란 이유에서다. 하이퉁(海通)증권의 수석이코노미스트인 리쉰레이(李迅雷)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2분기 7.6% 성장은 바닥”이라며 “하반기 경제는 경기부양책이 효과를 보면서 완만한 ‘U’자 형을 보이며 회복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 경제에 대해 부정적 전망을 해온 앤디 시에도 “어쨌든 당초 정부의 목표치였던 7.5%의 성장률은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럭저럭 현상유지는 할 것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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