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라켓 써" 배드민턴협회 추천 제품 품질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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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민턴 국가대표팀이 런던 올림픽 경기에서 사용한 대만업체 빅터의 배드민턴 라켓. [연합뉴스]

2009년 2월 대한배드민턴협회는 28년간 국가대표팀을 후원해 온 일본업체 요넥스와의 스폰서 계약을 해지하고 대만업체 빅터와 손잡았다. 4년간 매년 225만 달러의 현금을 포함해 총 1200만 달러(약 180억원)를 지원받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당시 협회는 “스포츠 마케팅의 우수 사례”라고 홍보했다. 그러나 협회가 국가대표는 물론 실업팀과 대학팀 등에 빅터 제품 사용을 강요하면서 일부 선수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특히 메달 ‘효자 종목’이었던 배드민턴이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 부진하자 논란이 더욱 커지고 있다.

 2009년 이후 협회는 국내 대학팀·실업팀에도 빅터 제품을 사용하라는 압박을 시작했다. 후원을 받는 국가대표팀은 빅터 제품을 써야 하지만 일반팀의 경우 의무 사항이 아니다. 한 대학팀 감독은 “빅터 제품을 쓰라고 협조 공문을 보내는 등 협회의 압력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한 실업팀 선수는 “선수마다 선호하는 라켓이 다른데 적어도 선택의 권리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일부 선수는 라켓은 빅터 제품을 쓰지만 경기력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스트링(줄)은 요넥스 제품을 쓰고 있다.

 또 다른 실업팀 선수는 “협회가 선수의 경기력에 도움이 될 방안을 고민하기보다 돈 벌 궁리만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배드민턴협회의 한 해 예산은 90억여원으로 대한축구협회에 이어 둘째로 많다.

 국내 대회 시합구도 2009년부터 빅터의 셔틀콕만 사용하고 있다. 그전까지는 요넥스·스타·모아 등 다양한 브랜드의 셔틀콕이 시합구로 쓰였다. 한 실업팀 감독은 “세계배드민턴연맹(BWF)이 주관하는 국제대회는 모두 요넥스의 셔틀콕을 쓰는데, 국내 대회만 빅터 제품을 쓰다 보니 선수들이 적응하는 데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일부 실업팀에서 시합구 교체를 협회에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국가대표 선수들도 국내 대회를 준비할 때는 빅터 셔틀콕을 쓰다 올림픽을 대비한 훈련에서는 요넥스의 셔틀콕으로 바꿔 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드민턴 용구를 선정하는 용구검정위원회에는 빅터 관계자가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현재 세계 배드민턴협회 가운데 요넥스의 라켓·셔틀콕 등을 쓰지 않는 곳은 한국과 중국뿐이다. 중국은 자국 브랜드 ‘리닝’을 전략적으로 키우기 위해 대부분의 스포츠종목에서 채택하고 있다.

 협회는 또 올 초 국군체육부대 배드민턴팀에 실업등록비 500만원을 내라고 요구했다. 국군팀은 그전까지 실업연맹이 주최하는 대회에 출전하면서 등록비를 낸 적이 없었다. 국군팀은 등록비 납부를 거부해 올 봄철대회 출전이 무산됐다. 한 실업팀 감독은 “국군팀은 협회 요청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등록비를 요구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며 “이런 식의 길들이기가 비일비재하다 보니 다른 실업팀도 협회 눈치만 보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협회 관계자는 “요넥스와 성능 차이가 거의 없다”며 "빅터와 좋은 조건으로 후원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이 제품을 애용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지 강제 사항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용구검정위원회에 특정 업체가 참여한 것에 대해서는 “셔틀콕의 기술적 측면을 조언하기 위해 임명했다. 용구를 선정할 때는 선수 의견을 충분히 고려한다”고 말했다. 빅터코리아 서윤영 대표는 “몇 개 실업팀에 스폰서를 하고 있는데 이 팀들은 빅터 제품을 쓰는 게 당연하다” 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협회 이사는 “지난 두 번의 올림픽에서 금메달 포함해 3개 이상의 메달을 따냈던 한국 배드민턴이 이번에는 동메달 하나에 그치는 등 내리막길을 걷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진영은 인턴기자(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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