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런던] 100번째 금은 남자 펜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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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한국 대표.

“저희는 무대 체질입니다.”

 올림픽 개막 두 달여 전, 남자 펜싱 사브르 대표팀은 자신 있게 포부를 밝혔다.

 당시 아무도 이들을 주목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영호(41·로러스 펜싱클럽 총감독)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남현희(31·성남시청) 등으로 대표되는 플뢰레에만 관심을 보였다. 사실 2004년 아테네, 2008년 베이징 대회에 연속 출전한 오은석(29·국민체육진흥공단)을 빼면 원우영(30·서울메트로), 김정환(29)·구본길(23·이상 국민체육진흥공단) 등 나머지 세 명은 모두 올림픽 첫 경험이기도 했다.

 하지만 대표팀에 런던은 부담감이 아닌 자신감의 상징이었다. 바로 ‘올림픽’이라는 점 때문이다. 펜싱의 본고장 유럽에서 대회가 열리면 ‘변방인’으로서 알게 모르게 많은 차별을 받았다. 하지만 올림픽은 전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된 무대이기에 공정한 조건 속에 실력으로만 대결할 수 있어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지난 5월 스페인에서 열린 월드컵 단체전에서 세계랭킹 1위였던 러시아를 꺾고 정상에 오르는 등 성적이 상승세라는 점도 자신감을 뒷받침했다.

 두 달 전 발언은 ‘약속의 땅’ 런던에서 현실이 됐다. 대표팀은 4일(한국시간) 엑셀 런던 사우스 아레나에서 열린 남자 펜싱 사브르 단체전 결승에서 루마니아를 45-26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8강과 준결승에서 각각 강팀인 독일과 이탈리아를 꺾고 올라온 기세를 그대로 몰아간 완벽한 금메달이었다. 단체전 엔트리 3명 외에 교체 선수로 출전했던 오은석까지 제 몫을 다하는 등 고른 경기력을 자랑했다. 여자 에페에서 ‘신아람 사건’이 터지며 심판 판정이 신중해진 덕도 봤다.

 이들의 금메달은 한국 올림픽사에 두 가지 뜻깊은 기록을 각인시키게 됐다. 먼저 한국 펜싱 사상 처음으로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하는 주인공이 됐다.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의 9번째 금메달을 따낸 대표팀은 동·하계 올림픽을 통틀어 100번째 금메달의 주인공이 되는 영광도 함께 안았다. 이욱재(47) 대표팀 코치는 경기 뒤 “선수들이 경기가 끝나도 100번째 금메달이란 것을 모르고 있다가 내가 말해 줘서 알게 됐다. 엄청 좋아하더라”며 에피소드를 밝혔다.

정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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