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진 중국이 보기에 한국은 작아져 갈등… 꼬여 있는 남북 관계도 악영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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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우리에게 기회인가, 위협인가. 중국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다면적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선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싫든 좋든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이라는 점이다. 이달 24일로 한·중 수교 20년을 맞는다. 그간 많은 발전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불거진 김영환씨 고문 사건에서 보듯 중국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갖는 사람도 늘고 있다. 한·중 상생의 길은 어디에 있는가. 그 해법의 실마리를 찾고자 중앙SUNDAY와 한국사회과학협의회가 1일 오후 토론의 장을 마련했다. 좌담회엔 김기수(국제정치경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문흥호(중국정치) 한양대 교수, 이원덕(일본정치) 국민대 교수, 이희옥(중국정치) 성균관대 교수가 토론자로 참석했다. 정용덕(서울대 교수·행정학) 한국사회과학협의회장과 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전문기자가 토론을 진행했다.

유상철 전문기자=한·중 수교 이후 20년간 양국 정부 관계는 선린우호관계→협력 동반자관계→전면적 협력 동반자관계→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로 격상됐다. 양국 교역도 3000억 달러 돌파를 목표로 하는 등 비약적 발전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근년 들어 두 나라 국민의 마음이 멀어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왜 그런 것인가.

문흥호 한양대 교수=세 가지 요인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 2008년 이후 양국 정부관계가 좋지 않았다. 정부 간 불신이 깊어지며 민간 차원에도 영향을 미쳤다. 외교와 현실 사이에 괴리가 생겼다. 둘째, 인적·물적 교류의 양적 확장에만 관심을 가졌지 이에 대한 사후 관리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셋째, 우리가 아무리 잘해도 안 되는 부분이 있다. 중국의 인식 변화다. 주변국을 바라보는 중국의 눈이 달라졌다. 커진 중국의 눈으로 보기에 한국은 작아졌다.

김기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민주자본주의 국가끼리는 싸우지 않는다는 유명한 가설이 있다. 동일한 가치관과 정치시스템 아래에선 싸울 수 없다. 그러나 중국은 민주자본주의 국가가 아니다. 우리와 다르다. 체제 차원에서 같아지지 않으면 골을 메우기 어렵다. 중국이 우리 식으로 변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한·중 갈등이 생기는 건 이상한 게 아니다.

이희옥 성균관대 교수=세계를 보는 중국의 눈이 달라진 점에서 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중국은 미국 주도의 질서를 수용하려 하지 않는다. 동아시아에선 더욱 그렇다. 그 결과 미·중 간 이해충돌의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한·중 관계도 마찬가지다. 한국이 보는 중국, 중국이 보는 한국 사이에 거리가 생기고 있다. 앞으
로 한·중 양국의 이익이 충돌하는 경우가 더 많아질 것이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중국에 대한 우리의 불편한 감정은 크게 세 가지 경로를 통해서 형성되고 있다. 첫째는 북한 문제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은 물론이고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서도 중국은 적극적인 대응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 둘째는 지역 문제다.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나 난사(南沙) 군도 문제 등과 관련해 중국의 태도가 거칠어졌다. 중국이 역내 패권을 추구한다는 인상을 준다. 일본에선 이 부분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크다. 셋째,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 등 고대사 논쟁에서 보여지는 중국의 신(新)중화주의 태도다.

유상철=한·중 간 접촉면이 넓어지면서 양국 사이에 마찰이 증가하는 건 당연하다. 중요한 건 해결하려는 노력이다. 중국에선 늘 “공통점을 추구하고 차이점은 남겨 두자”는 구동존이(求同存異)를 말한다. 반면 한국에선 “공통점은 추구하되 차이점은 축소하자”는 구동축이(求同縮異)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시점에서 김영환씨가 중국 공안당국에서 고문을 받았다고 폭로하며 양국 관계가 경색되고 있다. 중국은 공식적으론 부인하고 있다. 김영환씨 고문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문흥호=중국이 굴기를 했다고 하고, 또 커졌다고는 하지만 이런 사건을 볼 때 과연 중국이 강대국화됐다고 말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중국의 인권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지만 아직 국제적 수준에 미쳤다고 볼 수 없다. 중요한 건 우리의 태도다. 원칙적 입장에서 접근해야 한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기본 자세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 원칙을 갖고 이 문제의 해법을 찾아야지, 국내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오락가락해선 안 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 하는 것은 현재 중국에 구금돼 있는 600여 명의 한국인에게 큰 영향을 미칠 뿐더러 앞으로도 중요한 선례가 될 것이다. 필요에 따라선 국제사회와의 협력도 강구해야 한다.

김기수=한 국가의 정치체제를 볼 때 그 체제가 강하냐 약하냐를 가르는 기준이 있다. 그건 어떤 이슈가 발생했을 때 그 충격을 흡수할 능력이 있느냐 여부다. 중국 정부가 강하다면 김영환씨 문제의 파장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중국은 수용하지 못하게 돼 있다. 흡수해서 충격을 완화시켜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왜 그런가. 중국 체제가 약한 것이다. 민주정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김영환씨 사건은 중국을 상대로 우리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이를 안 하겠
다면 외교를 안 하겠다는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

이희옥=물론 한·중 간엔 기본적으로 규범과 체제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중국에 대해 선입관을 갖고 있지 않나 하는 점도 생각해 봐야 한다. 중국도 나름대로 보편적인 규범을 추구해 나가고 있다. 상대를 이해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상대를 존중할 필요는 있다. 중국은 과거에 민주주의나 인권 등을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민주주의·인권 모두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국제 사회가 중국의 변화를 과소평가하는 측면이 있다. 서로가 서로를 보는 체제 관념으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 미·중 지도자가 인권과 관련해 주고 받는 말을 한 번 음미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에게 “중국의 특수한 상황은 인정한다. 그러나 인권은 보편적 가치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후 주석은 “인권은 보편적 가치다. 그렇지만 중국은 특수한 사정이 있다”고 말한다. 두 지도자의 말에 방점이 찍히는 부분이 서로 다를 뿐이다.

정용덕 한국사회과학협의회 회장=접근 방법에 차이가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김기수 박사는 프레임 차원에서 접근한다. 한·중이 이데올로기적인 정치체제가 달라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본다. 반면 이희옥 교수는 기능주의적 접근을 한다. 중국이 실질적으로 많이 발전했으며 사회주의이지만 자유민주주의와 유사한 측면도 많다고 본다. 한·중 양국의 갈등 완화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인가.

이원덕=현실적으로 한·중 간에는 힘의 불균형성이 존재한다. 우리가 어떤 직접적 조치를 취함으로써 중국이 보다 보편적 가치를 추구해 나가도록 만들기는 어렵다. 그러나 방향성은 가져야 한다. 그것은 중국이 국제규범을 지키는 국가로 나아가게끔 만드는 것이다. 다자주의를 통해 이를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미국이나 일본 등 여러 나라의 대(對)중국 목표는 중국이 세계 평화·번영의 일원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국제적 다자협의가 좋은 방법일 수 있다.

문흥호=우리가 중국과의 갈등을 줄여 나가기 위해선 우선 남북한 간에 기본적인 물꼬가 트이지 않으면 안 된다. 최근 벌어진 한·중 마찰의 상당 부분이 북한 문제를 둘러싸고 발생하고 있다. 남북한 관계가 긴장을 해소하지 못하고 경색돼 있는 상황에선 한·중 간엔 언제든지 갈등이 재연될 소지가 있다.

김기수=중국 스스로 변할 필요가 있다. 중국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고 하지만 사법·언론 분야 등에서의 자유가 획기적으로 진전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민주화가 이뤄져야 중국 자본주의 또한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선 중국이 번영할 수 없다. 확실하게 변하지 않으면 잘 살수 없다.

이희옥=중국 정부는 세계 변화에 기민하게 따라가는 능력이 있다. 중국 지도부는 열심히 공부하며 셔츠 바람으로 토론하는 문화가 있다. 이른바 집단 학습의
전통이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은 위에서 아래로의 톱다운 방식이다. 그러다 보니 “영혼이 없는 공무원”이라는 말이 나온다. 개인적으론 지난해 초 발생한 아랍의 봄이 중국에 전파되지 않을 것으로 봤다. 중국에는 현재 트위터 이용자만 3억 명에 가깝다. 결코 개방도가 낮다고 볼 수 없다. 그럼에도 (공산당) 체제가 유지되는 건 지도부가 자신의 문제점을 제대로 알고 적절하게 대처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스스로도 자신들이 개선돼야 하며, 또 새롭게 변화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있지만 지속가능한 게 중국 체제다.

정용덕=중국인들 입장에서는 경제성장 속도가 빠를 때는 얼마간의 불만이 있더라도 자긍심을 가지고 살 것이다. 그러나 1987년 한국의 민주화 바람처럼 소득이 일정 수준에 이르면 폭발하지 않겠는가.

김기수=중국과 같은 저개발 국가의 경제발전 방식은 간단하다. 국민들로부터 돈을 짜내는 것이다. 이른바 강제 저축이다. 지금 중국이 그렇다. 돈을 짜낸 뒤 이 돈을 전략적으로 투자한다. 그리고 투자해서 생산된 물건을 파는 물꼬를 해외에서 잡았다. 이것이 중국의 경제성장 방식이다. 투입 중심의 수출주도형 정책인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희생을 끌어내는 전략에는 한계가 있다. 중국도 결국은 사람 사는 사회다. 국민의 희생을 담보로 한 발전 방식을 과연 언제까지 끌
고 갈 수 있을지 극히 회의적이다.

문흥호=중국의 경제성장이 지속가능하려면 우선 중국이 안고 있는 두 가지 중요 문제에 대한 해결 능력이 있어야 한다. 첫째는 빈부격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다. 둘째는 정의(正義)를 실현할 수 있느냐다. 정의는 공정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과거 중국에서 공정이나 정의를 찾기란 어려웠다. 현재 중국은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사법개혁에 신경을 쓰고 있다. 사법개혁 없이는 정의 또한 없다는 입장이다. 중국의 강점은 자신의 병(病)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문제를 전혀 모르고 있지는 않다. 약한 고리를 알고 있기 때문에 계속 치유를 한다. 이런 게 중국 성장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이희옥=한국은 민주화된 사회이지만 정권 말기마다 부패가 발생한다. 중국은 이를 보고 한국은 왜 저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까 생각한다. 위기는 어디에나 있
다. 중국 사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위기와 붕괴는 다른 문제다. 아마 중국이 현재 안고 있는 위기를 덧셈을 통해 합산해 보면 수습 불가능한 나라라는 답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지금 중국이 맞닥뜨리고 있는 위기 역시 새로운 위기가 아니다. 격차를 어떻게 해소할 것이며, 각종 사회보험을 어떻게 완비하며, 당내 민주화를 어떻게 이룰까 하는 문제 등에 대한 답안을 중국은 이미 갖고 있다. 한 발 앞서 위기를 포착하는 능력을 중국은 갖고 있기 때문이다. 특별한 변수, 즉 엄청난 경제 경착륙이나 아래로부터의 압력, 또는 제2의 천안문 사태가 터지지 않는 한 중국에서 위기가 터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원덕=나는 중국 공산당원의 숫자에 주목하고 싶다. 현재 공산당원 수는 8200만 명이 넘는다. 근대화론은 국가의 사이즈를 커버하지 못한다. 전통이라는 요인
도 감안해야 한다. 중국이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에 이른다고 해서 꼭 민주화가 이뤄질까 하는 데 회의적이다. 중국에 근대화론은 적용되지 않을 것이다. 13억 국가에 딱 들어맞는 정치체제 이론은 없을 것이다.

정용덕=중국은 외부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나름대로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모습이다. 중국이 이제까지 이룩한 경제성장이 가히 놀랄 만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렇다면 그런 중국의 부상이 우리에게는 기회인가, 위협인가.

이원덕=‘기회이자 동시에 위협’이라는 게 정답이 아니겠는가. 중국을 가장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는 건 일본이다. 중국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본다. 미국은 비관 반, 낙관 반이다. 한국은 낙관론자가 더 많다. 중국과 가장 연동돼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최대 시장이자 최대 공장이다. 중국의 경제발전에 편승해야 한다. 한국이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이 방면에서는 가장 유리하다. 중국이 성장을 유지하는 한 한국에 기회가 있을 것이다. 중국이 무너지면 한국도 위험하다. 다른 한편으로 위협 요인은 안보 측면에서 나온다. 북한과 관련된 우려 사항이다. 이 문제를 중국과 연계하면 위협은 더 커진다. 한국 혼자 힘으로 안보 문제를 풀기는 어렵다. 한·미, 한·일 우호협력 관계가 필요하다.

문흥호=기회와 위기 요인이 병존한다. 중요한 건 우리 하기 나름이란 점이다. 이 부분에서 키 포인트는 남북관계다. 위기와 기회의 출발점 모두 남북관계에 있다. 남북관계와 중국 문제가 긴밀하게 연계돼 있기 때문에 남북관계를 풀지 않고선 중국 문제를 푸는 비법이 따로 있을 수 없다. 이와 함께 중국을 정확하게 보는 눈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정치, 정당, 특정 세력의 이해관계에 따라 중국을 읽는 눈이 달라져서는 안 된다. 한국은 중국을 보는 많은 노트가 있다. 문제는 종합노트가 없다는 점이다. 이에 비해 우리 경제 섹터는 정부 부문보다 훨씬 현명하다고 할 수 있다.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은 중국의 풍향을 잘 읽고 있다. 어떤 부분에선 우리 정부가 방해만 하지 않으면 된다.

김기수=우리 전체 무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건 사실이다. 디펜던시(dependency)라 말할 때는 우리가 아픈 것을 의존이라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대중 의존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 대중 수출의 75% 정도가 중간재나 부품소재, 기계장비다. 중국은 산업적으로 우리에게 의존해 있다. 중국이 크니까 중국에 대들면 곤란하다는 식의 논리엔 문제가 있다. 우리가 아프면 중국은 더 아프게 돼 있다. 물론 중국 경제의 경착륙 시 우리가 받을 타격에 대비할 필요는 있다. 안보 문제와 관련해 북한이 거론되고 있다. 중국은 지정학적 이유에서 북한을 포기할 수 없다. 그렇지만 한·미·일이 힘을 합치면 북·중이 힘을 합쳤을 때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우월하다. 국제정치는 결국 힘이다. 우리가 미국과 일본을 중시해야 하는 이유다. 내 개인적 견해로는 100년이 지나도 중국의 힘이 이런 상황을 역전시키리라고 보지 않는다.

이희옥=위협을 구성하는 데는 세 가지 변수가 있다. 능력, 의지, 인식이다. 능력은 강한데 의지가 없으면 위협이 안 되고, 의지가 있는데 능력이 없으면 역시 위협이 안 된다. 인식은 독립변수다. 이를 갖고 안보 문제를 보자. 중국의 능력이 커졌다고 (한국을 위협할) 의지가 발동할까. 아니라고 본다. 또 과거의 조공체제와 같이 한반도를 속국으로 만들려는 의지가 중국에 있을까. 역시 아니라고 본다. 한국이 이에 순응하지 않으리란 걸 중국이 더 잘 안다. 중국이 한국에 부정적인 세력이 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경제적 측면을 보면 확실히 기회가 많다. 기업은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다. 중국 경제가 언제 어떤 위험을 맞게 될지 모르지만 당분간은 성장 추세를 이어갈 것이다. 특히 성장 패턴이 투자에서 소비 중심으로 바뀌면 기회는 더 많아진다.

정용덕=과거 한국의 정권이 중국과 사이가 좋을 때 미국과는 틀어졌다. 미국은 심지어 한국에 정보 제공도 하지 않았다. 한국 정부를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미국과 사이가 좋다. 그러자 이번에는 중국이 삐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선택은 어떠해야 하는가.

이원덕=현실주의자 입장에서 국가의 힘을 측정할 때 중국의 군사능력은 미국에 비교가 되지 않는다. 경제적으로도 우리가 1이라면, 일본이 5, 중국은 5.5, 미국은 13 정도다. 그렇다고 우리가 미·중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할 필요는 없다. 다 끌고 가야 한다. 세력관계 지도를 갖고 가야 한다. 중국의 힘은 계속 커질 것이다.

김기수=용어를 정확하게 사용하자. ‘우리가 미국과 친해지면 중국이 삐친다’는 논리는 양자가 능력이 비슷하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과연 미·중 능력이 비슷한가. 아니지 않은가. ‘주변 4강’도 같은 말이다. 이 말도 주변 4강의 힘이 비슷하다는 잘못된 전제를 깔고 있다. “미국과 연대하고 중국과 잘 지내자”는 연미화중(聯美和中)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중국이 우리와 진정으로 ‘화(和)’하려면 안보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닌가.

문흥호=미·중이 군사력만을 가지고 한반도에 영향력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미·중 대결의 결과만을 봐서는 안 된다. 이기고 지는 문제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문제에도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중국은 한국이 미국에 편승하는 게 아니냐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행여 한국이 미국의 중국 포위전략에 편승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이희옥=중국은 과거 한·미 동맹에 대해 좋다, 나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한국이 미국 편승정책을 강화하고 남북관계가 악화되기 시작하자 중국은 한·미 동맹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문제 제기다. 중국은 한·미 동맹이 미국의 중국 포위로 이어질까 우려한다. 우리로선 미국은 물론 중국과도 잘 지내는 연미화중이 현실적인 대안이다. 그러려면 한·미 동맹에 대해 갖고 있는 중국의 우려를 해소해줄 필요가 있다. 한·미 동맹에 어느 정도 조정이 가해져야 한다고 본다. 미국에 ‘노(No)’라고 말할 수 있을 때 중국에도 ‘노’라고 말할 수 있다. 반대로 중국에 ‘노’라 할 때, 미국에도 ‘노’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유상철=바람직한 한·중 관계의 미래를 위해 어떤 제안을 할 수 있겠는가.

김기수=섣부른 미국 쇠퇴론은 경계해야 한다. 반면 중국 경제가 2~3년 안에 무릎을 꿇을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한·미·일 3각 관계를 굳건히 해야 한다.

이원덕=한반도와 일본을 잇는 2억의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 대립을 지나치게 강조할 필요가 없다. 미·중은 상호 의존할 것이다. 한반도가 이 같은 상황에 맞서려면 일본과의 경제적 연대를 통해 2억 선진 경제권을 갖춰 규모의 경제를 이뤄야 한다.

문흥호=중국적 시각에서 미국을 보거나, 미국적 시각에서 중국을 봐서는 안 된다. 우리 스스로의 관점이 필요하다.

이희옥=세 가지를 말하고 싶다. 첫째는 우리가 국가 정체성을 지키려는 노력을 잘해야 한다. 바로 민주주의 시장경제다. 이를 잘해야 중국과의 관계에서 존중받을 수 있다. 둘째, 한·중 양자관계를 내실화하려면 남북관계를 잘 관리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미 동맹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셋째는 다자관계가 중요하다. 다자관계를 통해 중국 문제를 견인할 때는 견인하고, 배척할 때는 배척해야 한다.

정리=유상철 중국전문기자, 신경진 중국연구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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