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유창한 영어에 달변, 스포츠 외교에 능수능란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82호 04면

지난달 26일(현지시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가 열린 런던 그로브너 하우스 호텔. IOC 위원과 일부 기자만 출입이 허용된 복도에서 갑자기 격앙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총회가 끝나고 복도에서 새로 IOC 부위원장ㆍ집행위원ㆍ위원으로 선임된 이들이 서로를 축하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라 그 목소리는 더 크게 들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장웅(74·사진) 북한 IOC 위원.

런던올림픽서 만난 장웅 북한 IOC위원

그는 유창한 영어로 “도대체 이게 말이 되느냐”며 거칠게 항의 중이었다. 앞서 열린 북한과 콜롬비아의 여자축구 경기에서 인공기 대신 태극기가 올라간 소동에 대한 불만이었다. 본지는 물론 APㆍ로이터ㆍNHK 등 외신기자들이 신임 부위원장들을 상대로 벌이던 인터뷰를 서둘러 중단하고 몰려들었다. 장 위원은 이미 IOC 총회에서 이 문제를 제기했고, 자크 로게 IOC 위원장으로부터 가장 불행한 사고 중 하나라는 발언을 얻어냈다. 그러나 로게 위원장은 고의가 아님을 강조하며 단순한 인간적 실수였다며 원론적 답변을 했다. 총회장을 나서면서 장 위원은 기자들에게 불만을 쏟아냈다. 농구선수 출신으로 1m90㎝의 장신인 그는 때론 손을 번쩍 들어 보이고 목소리 강약을 조절해가며 열변을 토했다. 그 내용은 이랬다.

-이미 런던올림픽조직위 측에서 실수였다며 사과했는데.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런던 올림픽) 의전 담당자들이 팀 관계자를 불러 국기를 확인하지 않았다니 놀랍다. 영국이 출전한 경기에 독일 국기가 걸린다고 생각해봐라.”

-추가 사과를 요구하는 건가.
“사과는 선수단에 하면 된다.”

-구체적으로 IOC에 요구하는 바가 있나.
“앞으로 진행될 시상식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생긴다면 IOC에도 타격을 줄 거다.”

작심 발언이었다. “굉장히 화가 난 것 같다”는 질문엔 눈을 부릅뜨며 장 위원은 “당연하다. 당신이라면 화가 안 나겠나”라고 맞받아쳤다. 10분여간의 질의응답을 마치고 나가려는 그에게 “(북한) 정권의 새로운 지도자에 대해 한마디 해달라”고 물었다. 그는 한국 매체임을 알아보고 유창한 영어로 “그건 완전히 다른 범주의 얘기다. 이 자리에선 IOC에 관한 것만 얘기하겠다”며 선을 그었다.

친화력 강해 IOC위원들에게 인기
그는 늘 주목받는 국제 스포츠계의 거물이다. 북한의 동향이 워낙 신비스러워 그로부터 얻어들을 수 있는 베일 너머의 소식이 상대적으로 귀하기 때문이다. 그의 행동거지를 지켜보면서 드는 첫 인상은 능수능란이다. 칠 때 과감하게 치고 나오다가, 빠질 때는 철저하게 뒤로 빠진다. 그는 평소 농담을 즐기고 친화력이 좋기로 IOC 위원들 사이에서 정평이 나 있다.

하지만 그 역시 북한의 다른 관료처럼 여러 겹의 비밀스러운 장막에 싸여 있다. 그를 둘러싼 여러 정보가 뒤를 따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평양에서 태어난 장 위원은 농구선수 출신으로, 북한 대표팀에서 10년을 뛰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열렬한 농구 팬으로 알려져 있다.

장 위원이 IOC에 입성한 건 1996년이다. 애틀랜타 올림픽을 앞두고 열린 IOC 총회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함께 IOC 위원에 선출됐다. 99년 이전에 선출된 IOC 위원은 80세까지 정년이 보장된다(99년 이후 선출된 위원은 70세까지다). 장 위원은 1938년생으로 올해 74세다. 그가 건넨 IOC 명함엔 한 면은 영어, 다른 한 면은 IOC 공식 언어인 불어로 오스트리아 빈의 주소가 적혀 있다.

IOC 위원으로 선출된 이후 유럽을 근거지로 살아온 터라 혹자는 장 위원에 대해 북한 정권의 유럽 자금줄 관리 총책이다북한 정권 내 실세다라고 말한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20년 가까이 외국 생활을 했다는 점에서 북한 정권의 신임이 두터운 인물이라는 점만큼은 확실하다고 평했다.

그런 점에서는 비밀스러운 인물이기는 하지만, 국제 스포츠계에서 그가 얻은 이미지는 반대다. 아주 활달한 편이다. 유창한 영어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전달하는 태도 때문에 그의 인기는 꽤 높은 편이다. 4일 현재 금메달 4개를 딴 북한 선수단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런던에서 그 또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중이다.

미디어를 대하는 태도도 노련하다. IOC 총회와 같은 국제 스포츠 이벤트에서 그는 항상 한국ㆍ일본 기자들에게 에워싸인다. 올해 초엔 ‘미국의 소리(VOA)’ 라디오 방송과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여자 선수들의 선전을 기대한다고 운을 뗀 그는 우리 평양에서 여자들이 좀 강해요.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잘해서 남자들이 조금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라며 농담도 했다. 평창이 2018년 겨울 올림픽 유치전을 벌였을 당시엔 IOC 위원으로서 중립성을 지켜야 하므로 그에 대한 인터뷰는 하면 안 된다면서도 IOC 본부 호텔의 바에서 맥주 한 잔을 들고 만날 때면 그래도 평창이 잘 됐으면 좋겠다며 ‘오프(비보도)’를 전제로 평창이 너무 ‘예스’만 해선 곤란하다는 식의 충고도 덧붙였다.

하지만 실제로 그가 표를 던진 쪽은 평창이 아니라는 얘기도 돌았다. 뮌헨 유치위원회 측 관계자는 유치전이 끝난 후 기자에게 장 위원은 사실 친뮌헨 인사로 분류돼 있었다고 귀띔했다. 그를 오래 취재해온 일본 교도통신의 히로키 쇼다 런던특파원이 장 위원은 정치적으로도 능수능란한 인물이라고 평한 이유다.

북한의 유럽 자금줄 관리 총책
장 위원을 처음 만난 건 2010년 7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회 유스(청소년)올림픽 IOC 호텔 조식 레스토랑에서였다. 장 위원은 영어신문인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을 옆구리에 끼고 배구선수 출신인 부인과 축구선수 출신인 막내아들 정혁(35)씨와 함께 유유히 나타났다. 사람들이 비교적 적은 안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는 접시에 오믈렛이며 샐러드ㆍ과일을 담던 그는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동료 IOC 위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유럽 위원들과는 양볼에 키스를 하며 능숙한 프랑스어로 인사를 건넸고 다른 대륙 위원들과도 반갑게 악수를 나눴다. 다가가 중앙일보 기자임을 밝히자 부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던 부인과는 달리 장 위원과 막내아들 정혁씨는 여유로운 태도를 보였다. 다음은 당시 식당에서 우리말로 나눴던 대화다.

-IOC 위원들과 친분이 두터우십니다. 동료 위원들이 칭찬을 많이 하더군요.

1996년부터 오래했으니까요. 서로 오래 알았으니 좋은 말 해 주는 거겠지요. 그전 (북한 측 IOC) 위원은 영어를 잘 못했어요.

-북한 측 위원으로 활동하기가 어떻습니까.

사실 난 제언도 쓴소리도 많이 합니다. 지금 IOC는 유럽에 너무 편중돼 있어요. 한심할 정도입니다. 우리 아시아 측 위원들이 좀 더 힘을 내야 합니다.

인사를 건네는 동료 IOC 위원 때문에 대화는 끊겼지만 아들 정혁씨가 먼저 중앙일보십니까? 좋은 기사 많이 써주십시오라며 인사를 건넸다. 그 역시 아버지 못지않게 서글서글하고 외교관 같은 인상을 풍겼다. 북한 대표팀 골키퍼로 활약했던 그는 저도 서울과 부산에 공화국(북한) 대표선수로 갔던 기억이 납니다라며 미소까지 지어 보였다. 당시 빈에서 스포츠과학을 공부하고 있다던 그는 공화국에 돌아가 교수가 되는 게 꿈
B>이라고 했다. 다음 날 아침 호텔 조식 식당에서 그들을 기다렸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2000년 시드니 여름 올림픽 개막식의 남북 선수단 공동 입장을 위한 막후 교섭에서도 큰 역할을 했던 장 위원은 당시 평창 올림픽에서의 남북 협력 문제와 관련한 기자의 질문엔 정치적인 문제라…. 하지만 희망과 기대는 있지요라고만 말했다. IOC의 올림픽 헌장상 북한과의 공동 개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개막식 공동 입장 등의 움직임이 있을 경우, 북한 측을 대표해 협상에 나설 인물이 장 위원이다. 그는 평창이 개최지로 확정된 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총회 IOC 본부 호텔 바에선 기자에게 시간이 남았으니 두고 보십시다라며 여지를 남겼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