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택시기사가 본 '요지경 LA'

미주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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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순서
1. 수갑 찬 목사님
2. 하루 20시간 운전하다
3. 진상 손님을 맞다
4. 위험한 초대 ‘약 손님’
5. 회장님, 회장님
6. 그곳에선 무슨 파티가

꼬박 1년을 놀았다. 밖에 나가면 돈이라 종일 집에만 처박혀 있었다.

백수가 되면 일가친척도 예전 같지 않다. 실패하면서 한두 번 씩은 다 신세를 졌던 형제들이다. 또 빈털터리가 되자 부쩍 거리가 멀어진다. ‘왜 안 그렇겠나’ 이해가 간다.

그나마 친구 하나가 띄엄띄엄 연락한다. “살아는 있냐?”고.

부인? 핀잔 안주면 사람이겠는가. “염치도 없는 인간아….”

이민 온 지 30년. 30번 넘게 실패했다. 1년 매출 500만 불이 넘는 비즈니스의 사장 소리도 들었다. 빅토빌에 큰 집이 4채나 있었다. 하지만 불경기에 모두 날렸다.

3년 전 마지막 희망이던 식당마저 렌트비를 못내 문을 닫았다. 투자금 30만불을 하나도 못 건졌다. 남은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늦게 본 연년생 애들 데리고 장난감 가게에 갔다. “아빠가 지금 20불 밖에 없다. 둘이서 알아서 골라라.” 땀을 뻘뻘 흘리며 10불 짜리를 찾아서 돌아다니는 두 녀석을 보면서 마음을 고쳐 먹었다. 택시기사 모집 광고를 보고 전화를 걸었다.

‘딱 한 달만 해보리라.’ 회사 두 군데를 뛰며 하루 20시간을 찍었다. 잠자는 4시간을 빼고는 차 안에서 산다.

아침 7시에 출근해서 새벽 3시에 퇴근한다. 일요일, 휴일도 없다. 크리스마스, 추수감사절에도 손님을 받는다. 하루에 47콜을 받은 적도 있다. 타운 최고기록일 지 모른다.

수입은 일하는 시간에 비례한다. 이렇게 20시간을 쉬는 날 없이 일하면 한달 5천 불 정도 번다. 보통은 하루 12시간 정도해서 3천 불 정도 버는 게 평균이다.

20시간 씩 택시 모는 사람은 없다. 주변에서는 돈 독이 올랐냐고 비웃는다. 그렇게 일하면 누가 알아주기나 하냐고 핀잔이다. 하지만 이유가 있다. 스스로를 괴롭히고 싶었다. 극한까지 고통을 느껴야 했다. 비로소 마음이 편해졌다.

중학생 아들에게 얘기했다. 아빠가 택시 운전한다고. “실망이야 아빠.” 첫 반응이 그랬다. 택시 운전하는 아빠가 자랑스러울 리 있나. 당연했다.

얼마 시간이 지나자 아들의 태도가 변했다. 이제 사람들에게 ‘우리 아빠는 위너가 될 거야’라고 말한다.

마음이 짠하다.

정리 = 백종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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